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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0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3-20 조회수 : 513

복음: 요한 8,31-42: 
 
우리는 주님에 대한 희망과 사랑으로 죽음의 두려움에 충분히 맞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우리의 죽음을 진지하게 묵상하고 성찰하도록 초대하는 사순 시기에 큰 도움을 줄 명저가 출간되었습니다.
'남겨진 단 하나의 사랑’ ‘발타사르, 예수를 읽다’ ‘세계의 심장’ 등 불멸의 저서로 유명한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1905~1988)가 지은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가톨릭 출판사)입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대한 대 신학자로서 그의 신학 사상은 제2차바티칸공의회에 크게 기여하였는데, 이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현으로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그를 추기경으로 서임했지만, 안타깝게도 수여식 이틀 전에 선종하고 말았습니다.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를 우리 말로 번역하신 분은 존경하는 윤주현 베네딕토 신부님이십니다.
가르멜 수도자이신 윤신부님 역시 대단한 신학자이십니다.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지만, 다들 엄두도 못 내는 신학 서적들을 꾸준히 번역하고 출간하는데 진심인 신부님의 노력 앞에 큰 감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옮긴 이의 말에서 윤신부님은 아주 간략하고도 명쾌하게 죽음의 신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죽음은 인간이 존재하면서부터 떠안을 수밖에 없는 존재 방식입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으로 각인된 존재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인생에 ‘영원’을 각인하려는 염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각자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영원’의 조각을 새기려 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이러한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합니다.
마치 냉엄한 사형 집행인처럼 말입니다.
영원을 갈망하지만 그 시작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비극적인 존재, 인간의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있습니다.
성부에게서 인류 구원을 위한 사명을 위임받아 이 세상에 강생하시고, 친히 우리가 겪을 죽음의 무게를 짊어지심으로써 죽음을 인생의 마지막이 아닌 영원을 향한 희망의 아이콘으로 바꿔 주신 분, 그리스도야말로 결국 한 줌의 재로 영원히 사라질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향한 가능성을 결정적으로 선사해 주신 분이자, 인류의 진정한 ‘구세주’이십니다.” 
 
윤신부님께서는 오늘 우리 각자를 향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두려움 앞에
신앙인들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해도, 죽음은 여전히 이승에서 우리의 존재를
최종적으로 마감하며 해체하는,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괴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죽음에서 부정적인 측면보다 더 강한 긍정적인 의미를 봐야 하고 또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신비적으로 변화되어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에 동참함으로써 죽음 속에서 부활의 빛을 발견할 수 있는 신앙의 눈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한 희망과 사랑으로 죽음의 두려움에 충분히 맞설 수 있습니다.
죽음을 긍정적인 실제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과 깊이 일치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인에게 죽음은 자신을 ‘결정적으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과 결합시키는 기쁨과 희망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해 깔끔하고도 명료하게 선을 그어주신 신부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만일 우리가 죽음에 직면해서 두려워 떤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지닌 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 앞서 죽음의 의미를 바꾸기 위해 친히 죽음을 끌어안으신 주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한 개인으로서 우리와 함께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이미 당신 자신 안에 우리의 죽음을 간직한 채 수난하고 돌아가셨다.
무엇보다도 그분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 존재가 간직한 고뇌와 무능함 그리고 당신을 향한 열망이 부족한 우리의 내면을 제대 삼아 당신 자신을 성부께 온전히 봉헌하셨다.”(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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