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6,36-38
남을 되질할 되를 깨버린 이의 행복
오늘 복음은 남을 심판하지 않으면 나도 심판받지 않는다는 주제입니다.
내가 자비로울 때 자비로운 기준으로 심판받습니다. 주는 대로 받습니다.
반면 남을 단죄하면 그것으로 나도 단죄받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와 엘레우시스 사이의 성스러운 길에 살았던 불량 대장장이이자 산적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손님에게도 완벽하게 맞을 것이라고
주장한 침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잔인했습니다.
여행자가 침대에 비해 키가 너무 작으면 선반에 눕혀 잡아 늘여 펴곤 했습니다.
여행자의 키가 너무 크면 다리를 잘라서 몸에 맞도록 만들었습니다.
테세우스는 처음으로 아테네를 여행하던 중 프로크루스테스를 만났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이 다른 많은 사람에게 가했던 것과 똑같은 잔인한 대우를 테세우스에게도 가할 생각으로 테세우스를 침대에 누워 쉬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제압하고 그를 자신의 침대에 눕혔습니다.
그런 다음 프로크루스테스를 같은 방식으로 대했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손님을 괴롭히던 바로 그 방법으로 죽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며 나는 얼마나 부자유스럽습니까? 자기도 그렇게 못하면서 남에게 하도록 강요하면 다른 사람들 눈치가 있으므로 말도 실수할까 봐 제대로 못 하고 행동도 경직됩니다.
자기 판단의 감옥에 자신이 갇히는 것입니다.
자유로워하고 싶으면 자비를 원하면 남을 판단하는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우리 속담에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 진리를 압니다.
내가 외로우면 다른 사람들을 외롭게 만들고 있고 내가 짜증 나면 분명 다른 사람들을 짜증 나게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영화 ‘셰임’(Shame)에서 주인공 브랜든은 평범한 직장인지만 성에 대한 강박적인 중독으로 비밀스러운 삶을 살아갑니다.
당연히 그는 항상 고독하고 공허하고 외롭습니다.
여자를 자기 욕구의 충족도구로 여기기 때문에 세상도 그를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브랜든의 여동생 시씨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브랜든과 함께 지내게 됩니다.
브랜든은 시씨의 삶을 응원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상사 데이비드와 술집에 들렀을 때 시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데이비드는 그녀를 원하게 됩니다.
데이비드는 유부남임에도 브랜든의 집에서 그의 동생과 잠자리를 가집니다.
브랜든은 구토가 날 정도로 직장 상사가 밉지만, 그 화풀이를 동생에게 합니다.
오빠에게 쫓겨난 동생은 오빠에게 계속 전화하다가 자살 시도를 합니다.
동생을 품어줄 수 없었던 이유는 유부녀를 막론하고 흑심을 품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가
직장 상사와 동생에게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이유는 자기를 먼저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이 갈등의 굴레 안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받고 싶거든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영화 극한 직업에서는 형사들이 잠복근무하기 위해 치킨집을 차렸는데 의외로 장사가 잘된다는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왜 장사가 잘됐을까요? 사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 벌려고 한 게 아니니 아무 생각 없이 퍼주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주방장이 주인이 미워서 양념을 팍팍 썼더니
장사가 더 잘되더라는 것입니다.
더 주려 하니까 더 받습니다.
이 진리를 알면 세상에서 인정받지 않을 수 없고 가난할 수도 없습니다.
남을 건강하게 하는 트레이너가 몸이 안 좋아지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돈을 떼먹으려 하고 남의 명예를 도둑질하며 남을 아프게 합니다.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몇 배로 돌아올 줄 모르면서 말입니다.
행복해지고 싶거든 우리 안에 사랑을 방해하는 남을 심판하는 되를 깨버립시다.
저절로 심판하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죄와 싸웁시다.
이웃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할지만 생각합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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