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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3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2-23 조회수 : 552

2024년 2월 24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현대의 대표적인 영성가로 ‘토마스 머튼’을 뽑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트라피스트 관상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글 쓰는 일에 회의를 느꼈고, 진정으로 기도하는 관상가로 살기 위해 수도원에 입회한 것입니다. 입회 후에 그에게 수도원 장상이 불러서 소임을 맡겼습니다. 어떤 일이었을까요? 바로 ‘글 쓰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만을 바라보는 관상가가 되고 싶은데, 다시 세속의 일을 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글 쓰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면 이곳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까지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갈등 속에서 어느 날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관상가가 되느냐, 작가라는 활동가가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 후 자기가 싫어하는 일도 기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 역시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산다’라는 사실만 바라봐야 했습니다. 하느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과 함께하려고 하며, 포기하려는 텅 빈 마음에 그 자리에 하느님을 초대합니다. 즉, 하느님과 한편이 되기에 기쁨과 희망 속에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싫어하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또 싫어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싫어하는 일과 사람 속에서 우리는 평화와 기쁨을 갖지 못합니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고, 미움 등의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하게 됩니다. 바로 잊어버린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느님을 위해 산다’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포함하는 사랑을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박해자까지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원수를 대하게 되는 것, 나를 반대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모두 싫은 일이고 피하고 싶은 자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갑자기 그 사람이 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안에 계신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 하느님을 위해 살려면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싫어하는 일과 사람은 계속해서 우리 앞으로 다가옵니다. 그때마다 싫다고 도망가서는 안 됩니다. 적대적인 마음으로 싸워서도 안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랑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앞세워 사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명언: 화는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독이지만, 실제로는 당신에게 가장 큰 해를 입힙니다(로버트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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