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6,7-13
우리 손에 잔뜩 들려있는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인 것들을 내려놓읍시다!
부끄럽게도 언제부턴가 소임 이동 때 짐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혈기 왕성하던 젊은 수도자 시절, 원칙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 칠 때는 정말이지 이삿짐이 딸랑 가방 두개였습니다.
소임 이동하는 날, 양손에 가방 하나씩 들고, 정들었던 공동체를 뒤로하고 버스로 이동하던 시절의 그 홀가분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모아놓으면 한 짐입니다.
아무리 줄이고 줄인다 해도, 가방이 대여섯 개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차량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이 살던 수도생활 초년병 시절, 행복지수가 훨씬 높았습니다.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보니, 잡 생각하지 않고, 딴 데 쳐다보지 않고 오로지 아이들만 바라봤습니다.
하느님만 생각했습니다.
가난이 가져다주는 은총인가 봅니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마라.
신발은 신되 옷도 두벌을 껴입지 마라!”
가만히 생각해보니 조금은 너무 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장거리 도보 여행을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길 텐데, 적어도 비상금이라든지 비상식량은 챙겨서 떠나야 되는 데, 한 마디로 ‘몸만 가라’, ‘맨땅에 헤딩’하라는 말씀입니다.
지팡이는 왜 들고 가라고 하시는가 봤더니 당시 여행객들에게 지팡이는 필수 품목이었답니다.
광야나 들길을 걷다 보면 뱀이라든지 전갈이라든지, 들짐승을 만나곤 했는데 비상시 호신용으로 다들 지팡이 하나씩을 들고 다녔답니다.
그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예수님 당부였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더 묵상해보니 예수님 말씀이 백번 천번 지당합니다.
수도자로 살아보니 최소한의 것만으로 살 수가 있었습니다.
죽었다 깨어 나도 마트나 시장 한 번 안 가고 살수도 있었습니다.
더 높은 이상향을 추구하고, 더 영적인 삶을 갈구하다 보면 세상의 좋은 것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초월할 힘이 본인도 모르게 생겨났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극단적 물질만능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 앞에서 수도자들의 증거 생활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돈 없이도, 최첨단 문명의 이기 없이도, 번쩍번쩍 빛나는 자동차 없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수도자들이 보여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몸에 지닌 것이 많을수록, 통장에 잔고가 많을수록 거기에 신경 쓰이기 마련입니다.
더불어 서로 비교하게 되고, 그로 인해 분노하고 실망하게 되고, 점점 본질보다는 비본질적인 것들에 마음이 쏠리고,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물질이, 돈이, 명예가, 건강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들이 있더군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우리를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성경이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진리의 길이 있습니다.
형제들 사이에 오고 가는 끈끈한 우정이 있습니다.
우리 손에 잔뜩 들려있는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인 것들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우리 눈은 흐려져 있는 상태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식별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중요한 것이 버리는 것입니다.
내려놓는 것입니다.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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