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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1-14 조회수 : 631

어느 신부님께서 쓰신 책을 읽다가 신부님의 목표가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표가 조금 이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고해성사를 가장 잘 주는 사제가 되는 것.”

 

아니 사제가 당연히 고해성사를 잘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잘 준다는 것이 무엇인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이런 목표를 갖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적어 놓으셨습니다.

 

보좌신부 때 판공성사를 주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판공성사이기에 많은 사람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한 여학생이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울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님께서는 “뒤에 사람이 많으니까 다시 준비해서 들어오세요.”라고 차갑게 말했습니다.

 

문제는 이 여학생이 다음날 자살을 시도한 것입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신부님은 심한 가책을 느끼게 되었고 죄책감에 사제 생활을 그만둘 생각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직접 찾아가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때 이 여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 그렇게 미안하면 앞으로 조금만 더 고해성사 잘 주는 신부님이 되어주세요.”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기 사제 생활의 목표를 대한민국에서 고해성사를 가장 잘 주는 사제가 되는 것으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누구는 이 사건으로 좌절에 빠져서 포기하는 반면에, 또 누구는 더 나은 자기로 변화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또 다른 부르심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요한의 두 제자가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는 스승의 말을 듣고서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무엇을 찾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고 물었고, 주님은 “와서 보아라.”라고 답변하십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께서 직접 불러야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즉, 주님과 함께 머물고 그분을 따라가야겠다는 자기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 직접 가서 보아야 했습니다.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결단이 그리고 자기의 적극적인 변화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삶 안에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결단이 계속 요구됩니다. 절대로 좌절하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은 두 사람이 계속 서로만 쳐다볼 때가 아니라, 자신들을 넘어서 편협하지 않은 공동의 목표를 바라볼 때 오래도록 생존한다(엘루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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