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창조주 하느님의 시선과 비참으로 얼룩진 한 인간의 시선!
언젠가 한 기도 모임에서 저도 예수님처럼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대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저도 예수님처럼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멋지게 외치며, 그를 악령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내공이나 포스가 부족한 저였던지라 우선 큰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구마(驅魔)까지는 아니어도,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기도라도 해드려야 했었는데, 전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구마’ 그것 아무나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우선 바깥으로 드러나는 그 모습에 기가 질립니다.
눈빛이며, 분위기며, 말투며, 언행이며, 마주 앉아있으면 소름이 다 끼칩니다.
머리카락이 자동으로 일어섭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사람들 바라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측은한지 모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전도 여행의 베이스 캠프였던 카파르나움의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거기에 있던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을 만나십니다.
극단의 사악함이 극단의 신성함 앞에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그를 예수님께서 유심히 바라보십니다.
마치 징그러운 벌레라도 바라 보는 듯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달리, 예수님의 시선을 더없이 부드러웠고 따뜻했습니다.
한없는 측은지심과 연민으로 가득했습니다.
참으로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창조주 하느님의 시선과 망가질 대로 망가진 한 비참한 인간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극단의 신성함 앞에 극단의 사악함이 굴복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침내 참다못한 더러운 영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소리 소리를 내질렀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 24)
더러운 영이 들린 가련한 한 인간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측은지심으로 가득한 눈길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오늘 하루를 살아봐야겠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이 시대 또 다른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굽어보시고, 눈여겨보십니다.
죽음의 문화에 깊이 빠져든 청년들, 여러 가지 중독 증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청소년들, 극단적 세속주의와 편리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 배금주의와 소비향락주의에 젖어든 우리들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옛날 더러운 영에게 외치셨듯이 오늘 나에게 외치십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카파르나움에서 있었던 더러운 영의 추방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 말씀의 폭발적인 역동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 한 마디에 더러운 영은 순식간에 힘을 잃었고, 더러운 영에 들렸던 사람에게서 튕겨져 나와 내동댕이쳐집니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어느 정도 권위와 힘이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봐야겠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말은 이웃을 살리는 말인지 아니면 죽음으로 몰고 가는 말인지 반성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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