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43-51
거짓과 믿음은 어둠과 빛의 관계와 같다
믿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믿고 싶다면서도 거짓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방법은 이 두 길밖에는 없습니다.
곧 메시아로 만나고 라뽀니로 만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이 이 둘로 나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진리와 은총을 주십니다. 은총으로 만나면 메시아를 만나게 되고 진리로 만나면 라뽀니를 얻게 됩니다.
은총은 ‘삶의 이유’를 밝혀주고 진리는 ‘삶의 방식’을 알려줍니다.
어제 ‘서바이브’란 영화에서 우울증에 삶의 의욕을 잃은 주인공이 자신을 위해 죽어가는 한 사람을 살리고 싶어 자신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된 이야기 안에서 그 주인공이 만난 사람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진리로 만나는 방식을 알려줍니다.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대단한 게 나올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필립보에게 순종하여 예수님을 만나러 갑니다.
예수님은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라고 하십니다.
나타나엘은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보는 것’과 ‘아는 것’, ‘사랑하는 것’, 그리고 함께 ‘머무는 것’은 거의 동의어로 쓰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을 알기 이전에 우리를 아십니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나타나엘처럼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이들을 더 큰 믿음으로 이끄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아나요? 잘 모릅니다. 잘 안다면 이렇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잘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른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배울 수 있습니다. 솔직하지 않으면 배우지 못합니다.
미국 드라마 ‘마인드헌터’는 실제 FBI 프로파일러인 존 E. 더글러스(John E. Douglas)를 바탕으로 FBI 요원 홀든 포드(Holden Ford)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 시리즈는 자신이 범죄 심리학에 대해 확고한 이해를 하고 있다고 믿는 다소 거만하지만 야심 찬 젊은 요원에서 범죄 정신의 깊이와 복잡성을 깨닫는 노련하고 겸손한 프로파일러에 이르기까지 홀든의 여정을 추적합니다.
처음에 홀든은 범죄자에 대한 자신의 이해에 강한 믿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사건 해결에 적용하려는 열망과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쇄 살인범의 세계를 더 깊이 파고들면서 그는 자신의 초기 가정에 도전하는 복잡성과 미묘한 차이에 직면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자기 지식이 부족했음을 솔직히 인정한 홀든은 파트너 빌 텐치, 심리학자 웬디 카와 함께 투옥된 연쇄 살인범을 인터뷰하는 획기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합니다.
이 인터뷰는 강렬하고 충격적이며 심오한 통찰력을 제공하여 홀든을 인간 정신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 노출시킵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홀든의 관점은 극적으로 변합니다.
그는 이러한 범죄자들의 동기와 정신에 대해 실제로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겸손은 그의 결심을 약화하지 않습니다.
대신, 더 많이 배우고 이 지식을 혁신적인 방식으로 적용하려는 그의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시리즈가 진행됨에 따라 홀든의 진화하는 접근 방식이 결실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연결을 만들기 시작하고, 범죄 정신에 대해 새로 발견한 이해를 적용하여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여행은 단지 직업적인 여행이 아니라 매우 개인적인 여행이기도 하며, 그의 관계와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칩니다.
거짓말은 모든 안 좋은 것을 정당화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잎으로 자기를 가리며
자기들이 지은 죄를 자기들이 수습할 수 있다고 믿어버렸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느님과 이웃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비로 죄가 용서받는다는 진리를 무용지물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가죽옷은 거추장스러울 뿐입니다.
오직 그 가죽옷만이 자기 죄를 덮어주고 주님 앞에 나설 힘을 준다는 사실을 믿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은 믿음을 의미 없게 합니다. 그러니 믿고 싶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존재가 됩시다.
어둠과 빛이 공존할 수 없듯, 거짓과 믿음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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