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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1-04 조회수 : 733

요한 1,35-42 
 
라삐를 만남과 메시아를 만남의 차이 
 
 
오래 신앙생활을 했더라도 자신 있게 “나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할 수 있는 신앙인은
많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오랜 신앙생활 끝에 자녀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진다든지, 하려는 일이 잘 안되게 될 때는 신앙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신앙을 가졌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다고 해서 신앙을 포기한다는 말은 아직 진정한 신앙인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세속적으로 바라는 것만을 청하지는 않더라도, 메시아가 아닌 라삐만 만나려 해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는 말을 듣고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쫓아가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요한복음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동사는 ‘머무르다’ 입니다. 
 
우리는 가지로 포도나무에 머물러야 삽니다. 그들이 주님과 머무르고 난 다음에는 주님께서 랍비에서 메시아가 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메시아는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왕이고 예언자이고 사제로서 나를 지켜주고 가르쳐주고
아버지께로 이끄시는 구원자를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점점 그분이 랍비에서 메시아가 되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누구에게도 자신이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서바이브’는 2020년 개봉한 영화입니다.
외딴 눈 덮인 산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은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자살로 극심한 우울증과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여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압도적인
죄책감, 무력감, 버림받은 느낌으로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러다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해 남자 동료와 함께 눈 덮인 외딴 산에 좌초된 자신을 발견하면서
극적인 전환을 이룹니다.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여자 주인공에게 힘과 지지의 기둥이 됩니다.
영화의 결정적인 순간은 남자 주인공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궁극적인 희생을 합니다.
이러한 이타적인 행위는 여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를 위한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현실에 직면한 그녀는 자신의 가치와 생명 자체의 가치를 재평가하기 시작합니다. 
 
여자는 다쳐 더는 걸을 수 없는 남자를 살리기 위해 혼자 산에서 내려옵니다.
여기서 내면의 악마와 투쟁에 대한 은유인 늑대와 대결합니다 유리 조각만으로 무장한 그녀는 늑대와 싸우고 죽이며, 이는 그녀의 우울한 생각과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유리 조각은 본래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 준비했던
도구였습니다.
그녀는 변화된 경험을 통해 새로운 목적의식과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없었을 때 그녀를 믿어준 남자를 기리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나 때문에 죽은 이가 아니라 나를 ‘위해’ 죽은 이가 필요합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말로만 전한다면 그것은 라삐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 “나의 선생님!”이라 불렀습니다.
아직은 그분이 메시아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라뽀니에서 메시아로 당신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형제들에게 가서 당신을 보았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과 이웃이 삶의 의미가 되게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나선 시간은 제10시입니다.
‘열’은 십계명을 상징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삶의 의미가 되는 순간이 그리스도와의 머묾을 통해 이뤄집니다. 
 
저에게도 라삐로서 ‘하.사.시.’가 함께 하였다면, “다 주었다”라고 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그분이 삶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메시아, 곧 내 삶의 구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머물며 그분이 나의 삶의 이유가 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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