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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8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3-12-18 조회수 : 688

예전에 자전거를 타다가 자동차와 부딪힌 적이 있습니다. 홀로 자전거 여행 중이었는데 차와 부딪힌 것이었지요. 너무 아팠습니다. 그런데도 이 차의 운전사에게 전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저의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 차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주자 중인 차였기 때문입니다. 그 차는 가만히 있는데, 제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부딪힌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 차 안에 사람이 있었고 또 운전 중인 차였다면 저 역시 화를 냈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게 운전하면 되냐고? 차는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자전거 운전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을 모르냐고 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차 안에 사람이 없으니 온전히 저의 잘못입니다. 누구 탓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를 향해 화를 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꼭 화를 냈어야 했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상대가 크게 잘못한 경우에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무조건 상대에게 책임을 물을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 자체를 지우고 그 상황만을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화를 낸다고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 화를 냄으로 인해 감정의 골이 깊어져서 상황이 더 꼬일 때도 많습니다.

 

전에 운전하면서 신호를 확인하고 좌회전하는데 제 좌측에 있는 차가 속도를 내어 직전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제 차의 왼쪽을 그대로 그 차가 와서 부딪혔습니다. 운전석에서 내려서 그 차를 향해서 갔습니다. 그리고 괜찮냐고 물으려고 하는데, 상대방 운전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저씨? 그따위로 운전하면 어떻게 해요?”

 

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보험회사를 불렀고, 결과는 상대방 과실 100%였습니다. 화를 내는 길보다 내지 않는 길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더 좋은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해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요셉이라는 인물을 만납니다. 그는 성모님과 약혼한 상태였지요. 그런데 마리아와 같이 살기 전에 아기를 잉태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다고는 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요셉 성인은 세상 사람들처럼 화를 내고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를 마음에 담아둘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느님의 방법을 선택한 요셉 성인이었기에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방법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셨습니다.

 

세상의 방법을 쓰면서 화를 내고 복수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는 하느님께서 함께할 자리가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리는 하느님의 방법을 선택할 때 가능했습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한 사람의 세계는 불행한 사람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다(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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