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 어떤 행사를 계획하면 꼼꼼하게 챙겨야 할 것이 많아집니다. 다가오는 성탄 자정 미사를 위한 준비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전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성가는 무엇이 좋을지, 미사 후의 뒤풀이는 어떻게 할지, 그날의 봉사자는 어떤 단체가 해야 할지 등등…. 신경 쓸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매일 하는 것이 아닌 일 년에 딱 한 번 맞이하는 예수님의 기쁜 성탄이기에 특히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성탄을 기억하면서 잘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구원일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마태 24,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하나도 없습니다. 분명히 중요한 일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무계획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무계획은 주님을 오롯이 따르겠다는 고백을 통해, 즉 주님께 바치는 기도에 의해 채워지는 것이었습니다. 당신께 대한 믿음, 당신 뜻을 따르는 사랑 실천을 통해 하느님의 무계획이 조금씩 채워져 구원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라는 말씀만 보고서 아직도 그날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삶으로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어 가는 것이기에 아직 무계획처럼 보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으로 채워지는 계획이기에 지금은 무계획처럼 보이지만, 계속 미루다가는 커다란 후회만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세대를 장터에서 노는 아이에 비유하십니다. 피리를 불면 함께 춤을 추면서 즐겨야 하고, 곡을 하면 함께 가슴을 치면서 아파해야 하는데, 지금 세대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만 현세의 행복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귀를 막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자 마귀가 들렸다고 하고, 예수님께서 드시고 마시자 먹보요 술꾼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보지 않고 또 받아들이지 않으니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도 불가능해집니다. 예수님의 뜻에 함께하면서 하느님의 무계획을 채워야 하는데, 예수님을 오히려 반대하면서 하느님의 계획에 동참하지 못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뒤로 미루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도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 세상 것을 모두 채우고 나서야 하느님의 일을 따르겠다는 안일하고 자기 편한 마음을 따르는 것이 아닐까요? 크게 후회할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오늘의 명언: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에이브러햄 링컨).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