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에 유명한 거목 이야기가 나옵니다. 쓸모 있는 나무는 베여서 대들보나 서까래로 사용되지만, 쓸모없는 나무는 베이지 않고 거목으로 자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실패했거나 낙오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삶을 새롭게 긍정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형제님이 있습니다. 공부도 잘했고, 운동이나 기타 예능 쪽에서도 남들과 달랐습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그곳에서도 그의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능력 많은 그에게는 너무 많은 일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말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했습니다. 건강은 점점 나빠졌고, 어느 순간 공황 장애가 찾아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뛰어난 능력과 재능으로 좋은 직장, 안정된 부를 누릴 수 있었지만, 건강을 잃고 나서는 그 모두가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반드시 능력과 재능이 많아야 좋을까요? 또 부와 세상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면 행복할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스스로 거목이 될 수 있는 삶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사랑 타령이었습니다. 돈 버는 법, 높은 지위를 얻는 방법, 그리고 병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이야기해 주셨다면 지금의 교회를 크게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은 전혀 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만 말씀하십니다. 사랑으로 스스로 성장시켜 큰 거목이 되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신체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체적인 고통 자체는 도덕적 악의 상징이고, 악에 그 이유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죄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때, 사람들 사이로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지붕의 기와를 벗겨 내고 예수님 앞으로 내려보냅니다. 당시의 사람들 시선은 마치 죄인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에 맞춰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루카 5,20)
우리 모두 주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죄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주님으로부터 직접 그 용서를 받는 영광을 얻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살 수 있도록 건강까지도 부수적으로 받습니다. 만약 그가 중풍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의 친구들이 지붕의 기와를 벗겨 내고 예수님 앞으로 내려보내지 않았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거목이 되는 길을 다시금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뿐이었습니다. 진짜 행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하나의 모범은 천 마디의 논쟁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다(토마스 칼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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