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9,35-10,1.6-8
하느님께서 그리시는 그림은 큰 그림입니다!
예사야 예언자는 대림시기를 보내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참으로 은혜롭고 가슴 설레는 가르침을 건네고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온통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절망과 낙담 속에 빠져 있는 오늘 우리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시온 백성아,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보리라.”(이사 30, 19-20)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참혹하고 힘겨워 울고 지내는 우리에게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하시니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십 년 세월 동안 목숨 걸고 기도 바쳤지만, 원하는 응답을 받지 못해 상심해하고 있는 우리에게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고 하시니, 좀 더 기다리며, 더 간절히 기도해봐야겠습니다.
‘도대체 하느님이 계시긴 한 것인가? 하느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이토록 혹독한 시련을 내게 허락하시는가?’며 울부짖는 우리에게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보리라.”고 하시니, 또 다시 희망을 가져봐야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관건은 기다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시계와 인간의 시계의 다름입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결핍은 인내심 부족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시는 그림은 큰 그림입니다.
먼저 밑그림을 그리시고, 그리고 나서 천천히 본 그림을 그리십니다.
우리 인간의 시계 바늘은 째깍째깍 바삐 돌아가지만, 하느님의 시계 바늘은 천천히, 아주 느리게 돌아갑니다.
간절히 목숨 걸고 아버지께 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노력은 더 중요합니다.
그런 과정 안에서 우리가 드리는 청원이 정녕 바람직한 청원인가 진지하게 헤아려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과정 안에서 얻게 되는 큰 은총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청이 수락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 오고 가는 하느님과 나 사이에 이루어지는 인격적인 만남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오늘도 혹독한 고통과 깊은 상처에 신음하시는 분들, 이사야 예언자께서 건네시는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들으시고 힘과 용기를 내시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주시는 날,
달빛을 햇빛처럼 되고, 햇빛을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든 듯하리라.”(이사 30,26)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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