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종합병원에 자기 분야에서 최고라고 불릴 정도로 훌륭한 의사 선생님 3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명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 얼굴도 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이 세 명의 의사가 협력해서 수술해야 하는 중환자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평상시의 안 좋은 관계가 이어져서 수술 중에 대화도 나누지 않고 얼굴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 중환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불일치와 불화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공산당 창설자인 그람시는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지난 20세기 동안 큰 노력을 해 왔지만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우리 공산주의자들 역시 그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는 교회 내부에 분열을 일으키면 교회가 무너지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신앙인들 탓에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지금도 일치하지 못하고 분열을 가져오려는 악의 세력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 세력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 역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생각을 똑같이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상대방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것을 틀렸다고 단정 짓지 말고, 나를 지지해 주지 않는다고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떤 모습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 됨의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래서 장점을 바라볼 때는 돋보기를 보듯이 크게 보고, 단점을 바라볼 때는 망원경을 거꾸로 보듯이 작게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야 호숫가에 가셨을 때, 많은 군중이 모여왔습니다. 이 군중의 수는 남자만도 사천 명으로 나옵니다(마태 15,38). 그렇게 많은 사람이 며칠 동안 있었을까요? 자그마치 사흘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외딴 산에 사람들이 이렇게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예수님 때문이지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또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들은 그곳에 모일 수 있었습니다. 이때 그들은 하나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없었을까요? 또 불평불만은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자기 뜻과 다른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만 있으면 되었으니까요.
일치하는 방법은 바로 예수님만 바라보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뜻을 따르면 그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가운데에서만 늘 다툼이 있고 분열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한 가지, 이런 일치 안에서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는 빵의 기적처럼 놀라운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에는 한 가지 법칙밖에 없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스탕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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