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5,29-37
우리의 결핍과 고통은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불러옵니다!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제게 다가오는 아주 작은 변화가 한가지 있습니다.
이웃, 동료, 형제들을 향한 시선의 작은 변화입니다.
전에는 경쟁의 대상이요, 시기 질투의 대상이요, 미움의 대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깊은 바닥 체험도 하면서 형제들을 향한 시선이 이제는 연민의 시선, 안타까움의 시선, 측은지심의 시선으로 바뀌었습니다.
앞모습만 바라보지 않고 뒷모습을 예의주시합니다.
모순투성이요 결핍투성이인 그의 모습도 바라보지만 다양한 한계와 부족함 속에 부대끼며 고생하는 가련한 모습도 눈여겨봅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기적도 체험합니다.
관계 안에서 언제나 티격태격하다 보니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는데, 연민과 측은지심의 시선을 지니게 되니,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그러려니 너그럽게 봐주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잔잔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연민과 측은지심이 불러오는 기적이 엄청난 것입니다.
당신을 따라다니느라 끼니마저 제대로 챙기지 못한 백성을 향해 지니셨던 예수님의 측은지심은
엄청난 빵의 기적을 불러왔습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마태 15,32)
하느님께서 왜 우리 인간을 당신 눈동자처럼 애지중지하시고 잔잔한 생명의 물가로 인도하시는가,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쌓아온 선행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 마음에 딱 드는 예쁜 행동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당신 계명에 고분고분 따랐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다가 아니더군요.
우리의 한계, 우리의 죄, 우리의 눈물, 우리의 고통...이런 우리 인간의 결핍이 하느님의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며, 그 결과가 결국 구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결국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결핍은 곧 있을 하느님 축복의 한 표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견디고 있는 이 모든 불행 역시 오래 가지 않아 변화될 하느님 위로의 손길이라 저는 믿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최악이라면 머지않아 하느님 도움의 손길이 다가오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지금 우리가 생의 가장 밑바닥에 서있다면, 올라갈 순간이 멀지 않았다는 표시입니다.
지금 눈물 흘리고 있다면, 지금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면, 사랑의 하느님께서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오심이 확실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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