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남을 아프게 하는 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일부러 아프게 하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평상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아픔을 주는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미망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까? 이 뜻은 남편을 여의고 혼자 된 여인입니다. 그런데 한자 뜻을 살펴보면, 아닐 미(未), 죽을 망(亡), 사람 인(人)으로 ‘죽지 않은 사람’입니다. 바로 여기에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따라 죽어야 한다는 유교적 사상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살색’ 역시 황인종 중심의 사고로, 피부색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표현입니다. 또 ‘결정 장애가 있다’도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주저하는 사람을 두고 흔히 하는 말이지만, 장애를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부족하고 열등한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깃들여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 있는 말을 자기도 모르게 사용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그런 잘못을 많이 범했음을 반성합니다. 실제로 제 말을 듣고서 크게 상처를 받았다면서, 한동안 저를 많이 원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계속해서 실수할 수 있는 우리였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말을 하는 데 노력해야 그나마 아픔을 주는 말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백인대장이 예수님을 찾아와 도움을 청합니다. 자기 종이 중풍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백인대장의 대답이 의외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말이 기억나십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속해서 표징만 보여달라는 말이었고, 예수님이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서 기적을 행한다면서 철저하게 반대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로마의 백인대장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진정한 회개와 겸손의 말이었고,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의 말이었습니다. 이 말에 감탄하시며 이렇게 이르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우리는 과연 어떤 말을 하고 있습니까? 특히 주님께 하는 말은 어떠했습니까?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에서 나오는 겸손과 감사의 말이었습니까? 아니면 주님께 대한 불평에서 나오는 불평과 원망의 말이었습니까? 우리의 말에 주님께서는 기뻐하실까요? 아니면 슬퍼하실까요?
오늘의 명언: 길이 막혔다면 원점으로 돌아가세요. 미로에서 헤매느라 실마리를 찾지 못할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의외로 색다른 발견을 가져다 줄 수 있답니다(쿠니시 요시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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