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아이들을 보며 저를 많이 반성합니다. 아이들은 작은 것도 소홀히 보지 않습니다. 저를 유심히 바라보던 한 아이가 “왜 신부님은 흰머리가 많아요? 왜 이렇게 늙었어요?”라고 말합니다. 매일 보는 ‘저의 얼굴’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었으니 흰 머리카락이 나는 것이고, 스스로 그렇게 늙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씻다가 아이의 말이 생각나서 저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봤습니다. 쭈글쭈글한 주름이 늙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는 모든 것을 경이로워하고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범하고 무미건조하게 살아갑니다. 지극히 거룩한 것도 거룩하게 보지 못하고 그러려니 합니다.
어린이를 보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배웁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일화가 떠올려집니다. 운동을 너무나 좋아하셨던 교황님께서는 교황님이 되신 후에 운동을 할 수 없어서 너무 힘드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몰래 비서 몬시뇰님과 함께 스키장이 간 것입니다. 스키 고글이 있기에 그 누구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고글 안에 습기가 차서 교황님께서는 잠시 벗었습니다.
바로 그때 교황님의 얼굴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 순간 한 아이가 보고서, “아~~ 교황님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부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황님 닮은 사람이겠지. 교황님께서 여기 계실 리가 없잖아?”
어린이가 진리에 더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가 어린이 곁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날을 미리 알려 주는 표징들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가 잎이 돋자마자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가까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 마치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대홍수를 알지 못했던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것을 알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와 같이 작은 것도 소홀히 보지 않는 시선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것 안에 담긴 하느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날에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마지막 날에 큰 기쁨을 안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주님 말씀에 더욱 충실하면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으며, 동시에 하느님 나라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중요한 건 일정표에 적힌 우선순위가 아니라 당신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스티븐 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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