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 상 6,1-13 루카 20,27-40
진리가 부족하면 현세주의자가 되고 은총이 부족하면 인본주의자가 된다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는 일본 돈 만 엔짜리 지폐에도 새겨져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그는 폐쇄적인 계급사회의 부조리함을 느끼고 그것이 일본을 망치고 있다고 믿어 어려서부터 견문을 넓히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한 사람입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을 여행하고 그 곳에서 공부하며 받은 충격적인 사실을 ‘서양 사정’과 ‘학문의 권유’ 등의 책으로 출판해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평등, 개인의 권리와 자유, 한 인간으로서 개인의 독립과 책임, 관존민비의 타파, 민권의 신장, 국회 개설 등을 주장해 일본인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버렸습니다.
그의 덕분으로 일본이 빠르게 서양과 같이 근대화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는 오로지 서양처럼 되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만이 아니라 조선과 중국도 그런 길을 가야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조선을 자신들보다 훨씬 미개한 상태로 여겨 침략을 해서라도 아시아를 유럽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서양보다 먼저 조선과 중국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우리가 선생이고 조선이 하인입니다.”라는 말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는 서양 제국주의를 일본으로 끌어들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게 만드는 정신적 기틀을 세웁니다.
‘힘’만 좋아하고 ‘진리’를 모르면 ‘현세주의자’가 됩니다.
현세에서 잘살면 어떠한 비윤리적인 행위도 용납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일본인들은 아직도 후쿠자와의 생각을 따르며 자신들의 침략으로 한국이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는 ‘사랑’입니다. 힘은 이 사랑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
아무리 잘 살아도 자유가 없다면 지옥입니다.
남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후쿠자와는 공부는 많이 했을지라도 참 진리에 대해서는 무식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이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사두가이파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지극히 현세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로마 지배하에 있으면서도 독립보다는 그 힘에 결탁하여 잘 살고 있었던 이들입니다.
그러니 그들 안에 내세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심판이 있다면 현세를 즐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 부활은 있을 수 없다고 따집니다.
하지만 사랑을 진리로 믿는 이들에게는 부활이 필수적입니다.
사랑은 자신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에 부활이 없는 사랑은 허무한 죽음밖에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반드시 그에 대한 보상이 내세에서도 있어야합니다.
사랑을 참 진리로 여기는 이들은 부활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율법학자,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사두가이들을 반박한 예수님을 두고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라며 칭찬해줍니다.
박해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두가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데는 서로 일치했지만 자신들끼리는 교리가 달랐기 때문에 항상 싸웠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은 진리는 알았을지라도 은총(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 힘을 주러 오신 예수님도 필요 없게 여겼습니다.
사람은 ‘은총과 진리’로 태어납니다.
은총은 에너지이고 성령이시며, 진리는 말씀이며
성자이십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이 은총과 진리로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아기가 두 발로 걷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은총과 진리를 다 받아야합니다.
은총은 부모님이 주시는 양식입니다. 그 양식의 힘으로 부모처럼 하려고 걸음마와 옹알이를 시작합니다.
부모에게서 진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음식을 주지 않는다던가, 부모가 어떻게 걷는지 안 보여준다면 아이는 온전한 인간으로 새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힘만 강조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는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현세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사두가이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은 십계명을 알고
내세도 믿었기 때문에 진리에는 민감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총의 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랑을 자신들의 힘으로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인본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피인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아기가 부모로부터 양식을 받지 못하면 부모를 보아도 부모처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일본이 후쿠자와의 제국주의 사상으로 침략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의병운동도 많았고 3월 1일 독립선언서에도 발표했습니다.
이때 독립선언서에 빠져있었던 종교가 있었는데 유교였습니다.
당시 유생들도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은 했지만 붓으로만 하였습니다.
이는 ‘마음이 곧 이치다’라는 사상으로 유교가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유교는 ‘기(氣)’보다는 ‘이(理)’에 치중하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기는 힘이고 은총이며, 이는 말씀이고 진리입니다.
이 은총과 진리는 항상 함께 가야 사람을 온전히 성장시킵니다.
성령님과 예수님이 그러하신 것처럼 둘은 하나이면서도 둘입니다.
그 은총과 진리를 주시는 분과 함께 세 분이 사람의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힘만 좋아하는 현세주의자는 진리가 부족하여 절제할 줄 모르고 자신의 욕구와 싸울 줄도 모릅니다.
반면 진리만 좋아하는 인본주의자는 은총이 부족하여 알기는 하지만 그 아는 것을 이루기 위한 힘을 청하지 않습니다.
자신들 안에 그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은총도 진리도 다 하느님께서 아드님과 성령님을 통해 베푸시는 은총입니다.
우리는 이 둘의 균형을 잘 잡고 성장해야합니다.
진리를 명확히 깨달아 현세주의에서 벗어나고 기도로 아는 것을 실천할 힘을 청해야합니다.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균형이 맞추어져야하는 것입니다.
말씀(진리)만 강조하면 성사에 소홀해질 수 있고, 성사(은총)만 강조하면 말씀에 소홀해 질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만 해서도 안 되고 기도만 해서도 안 됩니다.
둘 다 해야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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