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암 걸린 사람이 다리 잘린 사람을 만났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행이다. 다리가 있어서.”
다리 잘린 사람이 암 걸린 사람을 만났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행이다. 암이 아니라서.”
각자 다행이어서 참 다행이다.(박미경, ‘생각이 달라도 괜찮아.’)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모두가 ‘다행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요? 그런데 ‘다행이다’라는 말보다, ‘희망이 없어, 끝장이야.’ 등의 부정적인 말을 쏟아낼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이는 주변 사람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나의 환경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등의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할까요? 희망이 없다고, 절망적이라면서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만 바라봐야 할까요? 아니면 ‘다행이다, 감사하다’를 외치면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환하게 웃어야 할까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면서, “오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한 거룩한 도성을 보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참 평화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멈추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한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그런 안타까움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희망을 보지 않고 절망과 좌절로 고개를 숙이고만 있다면, 그런 모습에서 평화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다행이다, 감사하다고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평화의 주님, 희망의 주님, 사랑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기쁘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명언: 싸움을 자제하는 것이 싸움에서 빠져나오기보다 쉽다(세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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