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간의 종은 ‘호모 사피엔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생존 시기가 겹치는 다른 종도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로 ‘네안데르탈인’입니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보다 아주 우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뇌 용량이 1.8리터로 1.4리터에 불과했던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컸습니다. 또한 매머드나 고래 등을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몸집도 컸지요. 이런 외적 조선을 보면, 멸종해야 할 종은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인 현 인류 종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멸종의 주인공이 바뀌었을까요?
‘호모 사피엔스’ 종이 남은 것은 ‘다정한 종’이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유력합니다. ‘다정함’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했고, 모든 어려움과 시련을 다정함으로 함께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 반해 우월한 ‘네안데르탈인’은 함께 하는 다정함이 없어서 멸종했다는 것입니다. 개개인으로는 뛰어나도 함께하지 못한다면 살아날 수 없음을 인류의 역사를 통해 알게 됩니다.
요즘의 사회를 보면, 현 인류 종인 ‘호모 사피엔스’의 고유 특징인 ‘다정함’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어갑니다.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함께하는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는 ‘다정함’을 표현하는 것을 왜 어려워할까요?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밝은 미소를 짓는 것, 긍정적이고 희망의 말을 전하는 것, 남에 대한 배려가 담긴 행동을 하는 것 등은 일상 안에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 종의 고유한 특성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힘들게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인간의 고유 특성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어쩌면 멸종의 위기를 겪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은총을 가득히 채워주신 그 성령의 감도로 성모님께서 아기 때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시는 것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바로 아기 때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셨다는 것은 아기 때부터 하느님의 뜻을 따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모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된 아기 예수님을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받아들이지요. 그 어떤 인간보다도 커다란 ‘다정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정함이 하느님의 뜻도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다정함’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작은 호의를 다정함에 담아서 서로 주고받아야 하겠습니다. 삶의 품격을 지키면서 남은 생을 멋지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에는 한 가지 법칙밖에 없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스탕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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