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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0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11-20 조회수 : 570

루카 18,35-43 
 
저 역시 산산조각난 인생일 뿐입니다! 
 
 
언젠가 시각 장애인 야외 행사 때 한 형제님의 도우미 역할을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전혀 앞이 안 보이는 분들도 계셨지만,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왕초보인 저에게는 그나마 봉사하기 쉬운 시각 장애인 형제님이 배당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입장에서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분들에게는 세상 모든 대상들이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이었습니다.
언제 어디를 가든 그저 조심 또 조심, 몸을 사려야했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 당시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혹독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의료 수준으로 회복이나 치유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사회 분위기상 시각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나 복지 혜택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가족들도 나 몰라라, 공동체도 그들을 소외시켰습니다.
더 억울한 일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시각 장애를 죄에 따른 벌로 여겼습니다.
앞을 못 보는 불편함에 죄인 취급까지 받으니 그 삶이 얼마나 힘겨웠겠습니까?
한 마디로 두 사람의 삶은 산산조각 난 것입니다. 
 
산산조각 났으니, 더 이상 내려설 곳도 없었습니다.
부끄러워 하거나 체면 차릴 여유도 없었습니다.
치유자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은 두 예리코의 눈먼 사람은 남아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동원해서 크게 외쳤습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복음 18장 38절) 
 
이윽고 자비하신 예수님께서 산산조각 난 그의 인생을 측은지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셨습니다.
가엾은 마음이 든 예수님께서 산산조각난 눈먼 이의 인생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워모으셨습니다.
마침내 산산조각난 인생을 당신 뜨거운 사랑의 용광로 속에 넣으셔서, 찬란한 명품으로 재탄생시키셨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 역시 산산조각난 인생일 뿐입니다.
주님 크신 은총 아니라면 단 한 순간도 제발로 서있을 수 없는 인생입니다.
그저 주님 자비만 바랄 뿐입니다.
주님 뜨거운 사랑만 기대할 뿐입니다. 
 
아침이면 아침마다 크게 외쳐야겠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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