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25,14-30: 탈렌트에 대한 이야기
오늘의 전례도 우리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깨어 기다리라고 한다. 그 기다림은 활동적인 면이다. 깨어있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이 열매를 맺도록 실천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마태오는 탈렌트의 비유를 통하여 마지막 때의 의미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주인이 종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기는 행위는 신뢰에서 비롯된 행위이다. 이에 맞추어 종들도 그 재산이 자기 것인 양, 잘 관리하여 그 신뢰에 보답하여야 한다. 이 때문에, 맡긴 돈을 땅에 묻었던 게으른 종은 주인의 신뢰에 대해 신뢰로 보답할 줄 몰랐기 때문에 지탄받는다. 한 탈렌트는 금 42kg의 매우 많은 액수의 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의미한다. 여기서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를 준 것은 그 종들의 능력에 대한 평가이다(15절). 여기서 주인이신 그리스도는 인색한 분이 아니라, 베풀어 주신 선물에 비례하여 요구하시는 의로운 분이시다. 하여간 앞의 두 종은 그 돈을 이용하여 두 배로 늘렸지만,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18절).
“오랜 뒤에” 주인이 돌아와 종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19절). 주인은 돈을 두 배로 늘린 종들을 칭찬하고 상을 주었는데 “많은 일을 맡기겠다.”(21.23절) 한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주님의 기쁨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그분이 가지시는 통치권에 참여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기쁨이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23절). 반면에 게으른 종의 태도에서 비유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두 사람의 좋은 결과를 보고 자기의 염려가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두려운 나머지(25절) 그가 맡은 한 탈렌트마저 잃어버릴까 염려하여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25절) 한다. 이것을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받은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주인은 이러한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두려움이란 신뢰의 관계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 종은 주인이 신뢰의 관계를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단순히 고용 관계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것이 바리사이 같은 모습이다.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주인의 뜻에 맞게 살지 못하고 탈렌트를 사용하지 못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어야 했다. 그 게으른 종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땅에 묻었다.
그렇다고 무책임한 모험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용기는 개방이며,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어머니의 행위와 같은 사랑의 봉헌 행위이지 자기 자신의 안위 때문에 위험을 두려워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선물 모두가 마땅한 결실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권고가 담겨있다. 이때 하느님은 더욱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속해있는 공동체의 성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개인이 성숙하지 못하면 교회도 성숙하지 못한다. 땅에 숨겨 놓은 우리의 탈렌트는 곧 모든 이를 위한 기회의 상실을 말한다. 이 때문에 주인의 판결은 준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해 자신의 탈렌트를 열매 맺도록 하라는 것은, 이러한 마지막 때라는 긴박 때문에 용기를 내야 하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신앙은 단순히 신경을 암송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은 내가 잘못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이 세상에서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게 밀어주는 그런 신앙이어야 한다. 무엇인가 잃을까 두려워서 무기력하게 있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28-29절). 이것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가 받을 상급보다도 더 큰 상급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며, 없다고 생각하여 땅에 묻는 사람은 그것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과 같아서 잃어버려도 잃어버린 줄조차 모르게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충실하고 열심한 그리스도인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실 더 큰 선물을 기다리면서, 그분이 이 지상 생활에서 베풀어 주시는 모든 선물에 대해 감사드려야 한다.
사도 바오로께서도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곧 다가올 주님의 재림에 대한 걱정을 없애주고자 하면서 “그 시간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며 주님께서 “밤도둑처럼”(1테살 5,1-2) 오실 것이니 깨어있으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빛 속에 살면서 빛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살 때는 도둑처럼 덮쳐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깨어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태만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켜 가면서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러한 삶으로 주님께서 나누어주시는 선물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오시는 날, 우리는 그분을 맞이하기에 합당한 자가 될 것이다. 그분이 오시는 날은 심판과 수확의 날이다. 그날은 우리가 이룬 결실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항상 그분의 선물에 감사하면서 생활한 삶으로 열매를 맺어 내어놓을 수 있는 생활을 이루어 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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