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7,1-6
용서에 믿음이 끼어드는 방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라고 하십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가장 큰 일은 무엇일까요? 미운 감정이 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에 미운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라고 하십니다.
그렇더라도 이 지상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용서를 배우는 일입니다.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청하는 사람이 있다면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믿음’의 역할이 강조됩니다.
사도들은 용서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믿음은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용서를 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해도 잘 안되는 예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믿음의 역할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주목할 만한 잘못된 처벌의 사례 중 하나로 꼽힙니다.
1999년 9월 28일,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서 할머니 한 분이 살해되었습니다.
조카 부부와 어린아이도 있었는데 그들에겐 눈을 가리고 위협만 하고 상해를 입히지는 않았습니다.
경찰은 가까운 곳에서 찾아낸 세 명의 용의자를 범인으로 몰아갔고 심한 고문과 가혹행위를 이기지 못한 청년들은 자기들이 범인이라고 허위 자백을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심의 가책으로 진범 세 명이 자수하였지만, 경찰과 검찰, 그리고 판사는 그들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진행된 것을 번복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 복역을 마치고 공소시효도 지난 시점에서 한 진범이 악몽에 시달려 자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용서하지도 않는데 자신이 그러면 뭐 하겠느냐며 다시 그 말을 번복했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는 당시 아이 엄마였던 최성자 씨에게 할머니를 살해한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최성자 씨는 망설였습니다.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최성자 씨는 스무 살이 된 아들에게 할머니가 그때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말을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강도가 들어올 때 아들은 다행히 잠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 아들을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했어야지!”, 곧 재심을 도와주었어야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최성자 씨는 여기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아이에게 피해가 갈 줄 알고 용서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 용서가 아이에게 오히려 인정받는 행위임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가해자를 만나서 용서해주었고 가해자는 그것에 힘입어 증언하여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세 명의 누명을 풀어주었고 나라로부터도 보상받게 했습니다.
용서는 사실 나의 죽음입니다.
그러면 부활의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용서의 십자가를 지면 부활의 기쁨을 준다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다면 못 할 게 없다는
것입니다.
고통은 쓰지만 그 열매는 반드시 달다는 것만 믿는다면 이 세상에서 이뤄내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최성자 씨는 아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그 부활의 기쁨이었습니다.
에바 모제스 코어(Eva Mozes Kor)는 악명 높은 나치 전범 요제프 멩겔레(Josef Mengele)에 의해 자행된 실험의 생존자였습니다.
멩겔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쌍둥이에 대한 잔인한 의학 실험을 실시했고, 코어와 그녀의 쌍둥이 자매 미리암은 그의 실험 대상이었습니다.
에바 코어는 수십 년 동안 요제프 멩겔레에 대한 깊은 증오와 분노를 품고 살았습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멩겔레의 실험으로 인한 고통과 트라우마로 얼룩졌고, 그 기억은 그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그녀의 쌍둥이 자매 미리암도 실험으로 인한 건강 문제로 고통받았고, 이로 인해 코어의 분노는 더욱 굳어졌습니다.
코어가 용서하기로 한 것은 1995년, 아우슈비츠 해방 50주년 기념식이 있기 전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과 자매가 겪은 고통에 대한 멩겔레의 인정과 사과를 원했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후였습니다.
그러나 코어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기 위해 용서라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용서하기로 한 코어는 용서의 선언문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 선언문을 통해 멩겔레에게 자신이 느낀 모든 고통과 분노를 용서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행위는 그녀에게 적극적인 선택이었으며, 그녀는 용서를 자신의 힘을 되찾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그녀는 용서를 통해 멩겔레가 그녀의 삶에 더 이상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녀 자신을 그녀의 과거로부터 해방하기를 원했습니다.
용서의 선언은 에바 코어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이 용서를 통해 해방감을 느꼈고, 증오와 분노의 감정에서 벗어나 내면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선택이 자유를 의미한다고 느꼈으며, 더 이상 희생자로 정의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코어는 이러한 용서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녀는 나머지 생애를 교육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바쳤습니다.
만약 용서를 통한 평화를 믿었다면 50년 동안 미움과 증오로 살며 고통을 겪지 않았어도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십자가에는 부활이 있음을 믿고 십자가를 져 봐야 합니다.
손해를 볼 게 없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뒤에 오는 부활의 기쁨을 자주 체험하다 보면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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