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복음: 루카 16,9-15: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어제 복음의 불의한 집사는 주인에게 영리함을 칭찬받았다.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자기 소유가 될 것들, 친구와 지지자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9절)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우리의 사랑을 받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 자선을 베풀 때, 우리가 상대를 골라서는 안 된다. 우리는 늘 너그러워야 한다. 늘 문을 열어 두고 나그네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은 잘 활용하라고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것이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이 재물을 잘 사용하여 백 배, 즉 현재 대신 미래, 없어질 것 대신 영원한 것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게끔 그것을 나누고, 장차 그들의 도움을 받기를 기대해야 한다.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 몫을 내주겠느냐?”(12절) 여기서 남의 것이란 우리가 소유한 재물을 가리킨다. 우리는 재물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알몸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1티모 6,7)라는 말씀대로이다. 우리는 그 재물에 대해 관리인에 불과하다. 땅의 재물로 가난한 이들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 우리 것이 아닌 물질로 주님을 따르는 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인 당신과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13절) 하느님과 함께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있다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해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는 버려야 한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주인은 오직 주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물을 섬기는 자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누구도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재물이 그 사람을 노예로 옭아매고 있다. 재물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재물에 대해 주인이 되는 삶이 하느님 앞에 올바른 자녀의 모습이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뜻에 맞게 재물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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