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이 다가올 때 마다>
장차 도래할 예수 그리스도의 ‘전형’이면서,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모범이자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 성조(聖祖) 아브라함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브라함의 굳은 신앙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희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로마서 4장 18절)
하느님의 언약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참으로 순수했고 우직했습니다.
즉시 식솔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라 하시니, 지체없이 떠났습니다.
거짓말 같은 말씀을 믿으라니 그저 믿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니 두말 않고 바쳤습니다.
갑작스레 고향을 떠나게 된 식솔들의 불평이 하늘을 찔렀지만, 아브라함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후손들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그의 확신에 주변 사람들이 다들 ‘맛이 갔구나!’ 하고 수군거렸지만, 그는 굳게 믿었습니다.
아들 이사악을 장작더미 위에 꽁꽁 묶는 그의 모습에 아들조차 ‘드디어 아버지가 미쳤구나’ 생각했지만, 그는 하느님께 철저히 순명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했습니다.
온갖 현실적 희망이 여지없이 무너질 때도, 하느님의 언약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전 밀라노의 대주교 마르띠니 추기경님께서는 아브라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아버지’,
‘하느님을 찾는 모든 이의 아버지’,
‘우리에게 인생을 가르치는 아버지’,
‘신앙의 나그네 길에서의 아버지.’
또한 아브라함이 걸어갔던 신앙여정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도 묵묵히 하느님을 향해 걸어갔던 여행길’,
‘하느님을 알고 있다고 믿었으나, 사실은 거의 아는 바가 없었던 답답했던 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하고 또 희망하면서 하느님을 알고자 노력했던 여정.’
아브라함의 성소 여정을 단계별로 꼼꼼히 살펴보면 위대한 신앙인의 아버지로 우뚝 서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절대로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즉시 알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수시로 하시는 말씀이 ‘일어나라!’ ‘떠나라!’ ‘믿어라!’ ‘맡겨라!’는 것인데, 많은 경우 단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무엇 하나 활실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그런 말씀을 던지셨습니다.
희망을 주셨지만, 그 희망이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약하셨지만, 그 무엇하나 순순히,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 오랜 기다림에서 오는 실망과 좌절이 컸습니다.
지속되는 여독으로 인해 삶이 늘 힘겹고 고달팠습니다.
마치도 우리들의 신앙여정, 성소여정처럼 말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느님께서는 기쁨과 영광도 주셨지만, 다양한 시련도 함께 주셨습니다.
때로 그 시련은 우리를 극한의 고통과 좌절에로까지 몰고가기도 합니다.
때로 그 시련이 우리를 여지없이 허물어트리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길고도 긴 여행길에 나선 우리 모두에게도 시련은 필수과목입니다.
시련이 다가올 때 마다 신앙의 아버지 아브라함에 어떻게 시련을 극복했었는지를
눈여겨봐야겠습니다.
때로 시련은 선물이요 은총입니다.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그릇된 하느님상, 그릇된 신앙관, 왜곡된 인생철학을 수정하고 쇄신시키는 차원에서 시련처럼 유용한 도구는 다시 또 없습니다.
시련이 다가올 때 마다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시련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시련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우리가 비록 시련 속에 있을지라도 그분께서는 우리를 당신 손 안에 넣고 계심을.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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