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부님께서 신자들과 함께 있다가 갑자기 방귀를 ‘뽕’ 꾸고 말았습니다. 신자들 앞에서 소리가 났다는 민망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방귀 뀌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이해해 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웃으면서 “죄송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어이없는 소문을 들었답니다. ‘우리 신부님께서 신자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바지에 똥 쌌다.’라는 소문입니다.
사실 소문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릅니다. 그리고 그 소문은 계속해서 살이 붙어서 사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가장 재미있는 말이 ‘뒷담화’라고 하지만, 재미를 떠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느님 마음에 드는 ‘성인’의 길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어떻게 전하고 있었을까요? 분명히 엄청나게 빠른 전파 속도를 가지고 있는 ‘말’인데, 우리는 다른 부정적인 말에 대해서는 소문의 속도에 더하고 있지만 정작 주님의 기쁜 소식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과거의 우리 신앙 선조들은 자기 목숨까지 내어놓으면서도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자유가 있는 지금을 사는 우리는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셔서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둘씩 보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일꾼이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이 소식은 우리 구원과 연결되어 있어서 빨리 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소식을 전하는 일꾼으로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이 소식이 아닌 다른 소식을 전하는 주님의 반대자로 사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루카 복음사가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성모님과 함께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더 가까이 그리고 생생하게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용감하게 세상에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쳐나게 하는 주님의 훌륭한 일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존 드라이든).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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