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제자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여기 바위가 하나 있다. 이 탑은 꼭대기까지 100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너는 이 바위를 탑 꼭대기까지 날라야 한다.”
제자는 바위를 끌어안고 힘겹게 탑 입구까지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탑으로 올라가는 문이 너무 좁고, 그에 비해 바위는 너무 큰 것입니다. 아무리 바위를 이리저리 돌려 보아도 문을 통과시킬 방법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을 부르며 말했습니다.
“스승님, 제게 불가능한 과제를 주셨습니다.”
이 말에 스승은 망치를 가져오더니 바위를 깨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쉽게 문을 통과시킬 수 있었습니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바위가 네 마음이다. 마음이 깨져야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
우리 마음이 깨져야 할 순간은 언제일까요? 어쩌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제자는 바위가 문을 통과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스승이 보여준 것처럼 분명히 방법이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깨야만 했습니다. 고정관념으로는 주님의 눈이 아닌 나의 눈으로만 볼 수밖에 없기에,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랑을 온전하게 실천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여정 중에,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문제는 그곳의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왜 이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목적은 과월절을 지내기 위해서입니다. 즉, 유다인들은 과월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과월절을 그리짐산에서 지냈지요. 따라서 전례적인 차이를 들어서 예수님 일행을 환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라면서 야고보와 요한이 분개합니다. 자기 스승에 대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홀대를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불을 불러 내려서 사마리아 마을을 불살라 버릴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정말로 그런 능력이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으면 어떤 불도 내릴 수 없습니다. 사마리아 사람과 함께하는 마음 자체가 없으니,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를 폭력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꾸짖고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어떻게든 함께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 누구도 구원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이 주님의 뜻에 일치하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과감하게 깨고 주님의 뜻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을 얻을 수 있다(플라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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