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직업과 소명에 대한 차이를 명확하게 일러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봉사와 희생은 직업일까요? 아니면 소명일까요? 당연히 ‘소명’입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은 “왜 돈도 되지 않는 일을 하는가?”라면서 소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직업의 측면으로만 보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일은 세상의 관점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그래서 먼 훗날 하느님 곁으로 가게 될 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족을 데리고 갈 수 없으며, 또 애지중지했던 나의 귀한 소장품 역시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자랑스러워했던 자신의 지위는 어떨까요? 이 역시 모두 내려놓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모두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누구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해야 합니다. 즉, 직업의 측면보다 하느님께서 보시는 소명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명의 측면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느님의 선물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은총’이라고 합니다. 은총의 삶은 세상의 관점에서 벗어나면서 주님 관점으로 살게 될 때 가능합니다. 가장 힘 있고, 가장 높으신 분의 선물이 형편없는 것일까요? 그 어떤 선물보다도 가장 훌륭한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군중으로 인해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라고 전해 줍니다. 예수님의 가족이니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도 먼저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세상의 관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관점은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를 뛰어넘습니다. 하늘 나라에 단순히 친한 사이인 인맥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만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관점이 아닌, 소명의 측면이 가득한 주님의 관점이 필요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모두 우리의 소명입니다.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그저 힘만 든 것 같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뛰어넘는 가장 큰 선물을 하느님 나라에서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사제는 미사를 봉헌할 때, “언제나 첫 미사처럼, 마지막 미사처럼, 유일한 미사처럼 정성을 다해 봉헌하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