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7,11-17
나쁜 재료를 주며 좋은 물건으로 돌려받기를 바란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인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십니다.
복음만 읽어보면 마치 예수님께서 과부와 그 죽은 아들이 불쌍해서 과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를 살려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왜 불쌍하게 죽는 이들은 모두 살려주시지 않으실까요?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도 보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어디에서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받을 마음이 없는데 선물을 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어머니의 믿음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 같지만 예수님의 이 말에 어머니의 큰 믿음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돌려주셨다”라는 말 안에는 어머니가 예수님께 먼저 “맡겨드렸다”, 혹은 “봉헌하였다” 라는 말이 전제됩니다.
맡겨드렸다는 말은 어머니의 능력으로는 안 되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나인의 과부는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맡길 줄 압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어서 하느님께 맡기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맡긴다는 말은 ‘죽여서 봉헌한다’라는 뜻과 같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이유는 자기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죽여서 맡기지 않고 살려서 맡기는 게 문제입니다.
그런 상태로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지고 변화될 수 있을까요?
요즘 선생님 신자들에게 엄마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학교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사연도 있습니다. 어떤 엄마가 선생님에게 보낸 문자입니다.
“선생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만,
제가 곰곰이 생각 좀 하다가 말씀드리는 건데요.
‘도덕책을 안 가져온 사람은 수업 시간 내내 서 있게 한다’라고 아이가 말하더라고요.
‘엄마 근데 나 도덕책을 잃어버렸어.’ 그날 밤 아이는 경기를 일으켰는데, 경찰서에 문의해보니 아동학대라고 하는데, 편법으로 아이들을 조지시면 편법으로 선생님을 조질 수 있다는 것만 기억해 주시겠어요 ^^”
선생님은 이렇게 답변하였습니다.
“어머님 제가 오늘 아이들에게 확인해 보았는데요.
제가 도덕책을 안 가져온 사람은 수업 시간에 서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이런 엄마들은 아이들이 이상해지는 것을 선생님 탓을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맡기지 않는데 어떻게 좋은 교육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20대 교사가 안타까운 선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구타당해도 선생님은 저항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 편이 없어? 교사가 죽었는데!” 라고 울부짖는 동료 교사의 말은 ‘이게 제대로 된 교육일까?’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데 심지어 동료 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프로필 사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른 아침에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선생님의 프로필 사진이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이들 어린데 선생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큰 영향을 준다는 거 아시죠? 아직 사실관계도 판명 나지 않은 일로 이렇게 추모한다는 걸 드러내는 건 아닌 것 같아 연락드립니다.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 있으니 언급 자제 부탁드려요.”
이 댓글 때문에 파문이 일자 또 이러한 댓글이 달렸습니다.
“선생님 제 문자를 여기서 볼 줄 몰랐어요. 너무 당황스럽네요. 개인적인 문자 내용을 유포하셨으니 각오는 되신 거죠? 학부모 회의안건으로 올릴게요. 너무 치욕스럽네요.”
어머니들이 이렇게 교육을 잘할 줄 안다면 왜 학교에 보내는 걸까요? 본인이 하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애 아빠가 지금 참고 있어요. 내가 말렸어요!”라는 등으로 협박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선생님들보다 더 잘 안다고 하는 교만 때문입니다.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이들에 대한 어머니와 선생님들을 위한
솔루션에서 “실제의 실천적인 변화가 오는 데에는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어느 유명 교육 전문가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세요.”
예를 들어 놀이터에서 줄을 서지 않고 먼저 타려다가 다치면 엄마는 왜 자기 아이가 줄을 서지 않게 키웠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들은 선생님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우리 애 마음 얼마나 읽어주셨어요?”
교육은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변화시키게 만들려면 맡겨야 합니다.
맡긴다는 말은 봉헌한다는 말입니다. 봉헌한다는 말은 죽인다는 뜻입니다.
요즘에는 다시 스마트폰도 빼앗을 수 있고 아이를 돌려보낼 수도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주 정상적으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을 믿지 못하면서 자녀를 맡긴다는 말은 학교 교육으로 내 자녀가 변화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변화시키고 싶다면 맡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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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을 주면서 변화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맡기려면 완전히 맡기십시오.
완전히 맡겼다는 말은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믿는다는 말입니다.
사제에게 성당을 맡겼는데 교구가 사제가 아닌 신자들의 목소리에 휘둘리면 어떨까요?
사제는 그 성당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됩니다.
사제가 봉사자를 뽑았다면 그 봉사자가 자신의 범주 안에서는 하고 싶은 일은 다 하도록 해야 합니다.
책임은 그 봉사자를 뽑은 사제에게 있습니다.
물론 사고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맡기려면 제대로 맡겨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봉헌하여 좋은 것으로 돌려받으려면 죽은 제물을 바쳐야 함을 잊지 맙시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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