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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9-12 조회수 : 632

루카  6,12-19 

 

나를 반대하는 사람 한 명 정도는 품을 줄 알아야 그릇이 좀 크다고 볼 수 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뽑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를 계획하실 때는 아침 일찍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기둥이 될 사도들을 뽑으실 때는 밤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인재 등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을 배신하게 될 유다를 뽑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님이신 분이 밤새워 기도하셔서 그러한 인물을 뽑을 수 있으셨을까요?

우리는 이것 역시 그분의 실수가 아닌 그분의 위대함의 일부로 보아야만 합니다.  

 

역사에 보면 위대한 인물 중에 인재 등용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 혼자 힘으로는 성장하는 게 한계가 있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 같이 다 사람들을 잘 뽑고 함께 일할 줄 알았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고 다 쳐내는 사람은

큰 그릇이 못 됩니다.  

 

삼국지에서 오나라 임금 손권이 젊은 장교를 장군 자리에 앉히려고 할 때 그 사람을 비난했던 사람을 품을 줄 아는 것을 보고는 안심하고 최고 장군 지위에 앉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가시 같은 사람도 품을 줄 아는 사람이 대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인재 등용의 신이라 불리는 세종대왕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본인의 능력이 출중했을 뿐 아니라, 아예 능력에 맞는 인재 등용을 목적으로 한 집현전까지 설치한 분입니다.

이곳에서는 분야별 전문가가 양성되었습니다.

능력 중의 능력은 인재를 등용하여 자기 사람으로 삼는 능력입니다. 

 

신숙주가 집현전에서 늦게까지 연구하다 잠이 들었을 때 세종대왕이 자기 옷을 덮어줬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또한 모든 인재를 잘 등용하는 인물들은 자신에게 쓴소리하는 적을 등용하려 하였습니다. 

 

조조는 관우를 그렇게 탐냈습니다.

관우에게 여포가 타던 천리마를 선물로 주었을 때

관우는 이제 정처 없이 도망을 다니는 신세인 유비가 어디 있는 줄 알면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적인데도 자신이 잘해 주었음에도 자기를 버리고 가는 관우를 죽이지 않고 보내줍니다.  

 

이 일로 조조는 엄청난 피해를 봅니다.

관우는 조조의 위나라를 많이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간 소설화된 것도 있겠지만, 조조가 위태로워졌을 때 관우도 조조를 살려주는 내용도

있습니다.

자기를 살려준 은인을 죽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조조는 성격이 포악했을지언정 사람은 잘 볼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위협이 될 적도 품을 줄 알았던 것입니다.  

 

세종대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신을 좋아하는 인재만 등용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극도로 반대한 인물이 황희정승입니다.

세종의 아버지 태종은 화가 나서 황희정승을 유배시켰습니다.

세종이 왕이 되자 황희정승은 죽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황희정승의 능력을 보고 그를 등용하고 자기 오른팔처럼 많은 일을 합니다. 

 

너무 일을 시켜서 은퇴도 안 시키고 죽기 직전까지 부립니다.

이것이 세종대왕의 그릇입니다.

감정이 아닌 목표를 위해서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까지 품을 줄 아는 사람이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가리옷 유다를 품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사.시.』를 보자면 두 가지 이유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유다가 사도단 밖에 있었어도 구원이 어려웠습니다.

그가 들어오기를 원하니 예수님께서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죽을 운명을 지닌 그를 곁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뜨거운 용암 속에 떨어지면 그 돌도 용암이 되듯이

당신과 제자들 안에서 유다도 구원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마치 우리 몸의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역할 때문이기도 합니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는 비바람이 불면 금방 죽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성덕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유다와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그만큼 강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유다를 통해 더 자기 자신들 안의 죄를 발견하고 그만큼 더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습니다.

유다가 한 번 배신할 때 베드로는 세 번 배신합니다.

그렇게 제자들이 더 겸손해지고 강해지게 하신 이유입니다.

제자들은 그런 유다를 품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나중에는 한없이 묵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하신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악이 없다면 우리가 분별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싸움 안에서 강해지고 하느님의 자녀임이 증명됩니다.

그래서 악을 없애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에도 분명 가장 꺼려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 이익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가 그 사람을 녹일 수 있고 또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더 강해지는데 도움이 되기에

주님께서 그 사람과 함께 하라고 맺어주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큰 그릇을 가진 신앙인들의 공동체입니다.  

 

큰 포부를 가지고 가시와 같은 사람도 곁에 둘 줄 아는 사람이 됩시다.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빛이 되기 위해서는 어둠까지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작은 빛으로 둘러싸 어둠을 없애고 그도 빛이 되게 합시다.

이것이 우리를 공동체로 엮어주시는 이유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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