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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7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8-27 조회수 : 391

복음: 마태16,13-20: 하늘나라의 열쇠를 너에게 주겠다. 
 
오늘의 전례는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과 이에 따른 교회 전체에 대한 특별 권한이 주어지는 것으로 신약성서의 메시지를 총괄하는 듯한 장중한 모습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는 고통받는 메시아로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사명을 다할 것이며, 교회가 이제 존속하기 위해서는 봉사와 직무는 베드로 안에 언제나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사야서에는 권한의 이양에 대한 개념이 많이 들어있다. 그중에도 열쇠라는 개념은 더 높은 사람에게서 받은 충만한 권한을 말한다. 이것이 오늘 복음에 예수께서 베드로를 교회라고 하는 당신의 집의 책임자로 세우신다는 의미로 베드로에게 그 의미를 적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론적 관점 외에 교회론적 관점이 있다. 오늘 복음의 그리스도론적 관점은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13절)에서 나타난다. 이 질문은 사람들의 생각을 알려는 것보다도 사도들이 당신의 신비에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질문이다. 사람들의 말은 당신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5절)고 물으신다. 이때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절)라고 고백한다. 오늘 복음의 고백은 다른 두 공관복음의 고백과는 다르다. 다른 두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즉 메시아로만 고백하지만, 여기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도 고백하고 있다. 베드로를 통해서 더 완전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이 믿는다는 것은 순전히 이성의 힘으로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지성을 넘어서는 어떤 사실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믿음이란 예수께서 말씀하시듯이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순수한 선물’이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17절). 그러나 이 베드로의 고백은 단순히 개인적인 사실로서가 아니라, 교회에 항구히 바쳐져야 할 ‘봉사’의 상징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론적 내용이 교회론적 내용으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가 비록 나약하지만 큰 책임을 맡기겠다고 선언하신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감히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8-19절).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한 베드로를 당신 교회를 세울 주춧돌로 삼으신다. 주춧돌의 역할이 주춧돌만이 아니라, 결합하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베드로의 역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 대한 유일한 믿음을 항상 새로이 제시하고 해석해 줌으로써 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너는 베드로이다.”(18절) 라고 하시면서도 “세울 것이다.”(18절), “열쇠를 주겠다.”(19절) 라고 하신다. 이것은 베드로의 봉사적 역할이 영속적으로 계속되리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즉 계속해서 베드로와 같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함으로써 이 교회의 주춧돌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항상 필요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악의 세력들(죽음의 힘)도 교회를 누르지 못할 것이다. 베드로의 믿음이 이 세상 끝날까지 교회를 지탱해 나갈 것이다. 이 믿음은 이제 여러 문화적 상황들과 접하면서 거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마주 대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주님께 대한 충만한 믿음으로 결정적인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9절). 열쇠라는 상징적 개념은 랍비적 형태의 표현으로 일정한 행동을 금하거나 허락하는 것을 권위 있게 선언하는 의미이다. 이것을 종교적 차원에서 본다면 이 표현은 공동체에서 제외하는 권한 내지 받아들여 주는 권한을 가리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받은 권한이 아니라,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로서 행하는 모든 것을 하늘에서 그대로 인정해준다는 사실이다. 베드로의 신비는 여기서 유래하는 것이다.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 안에는 그리스도의 현존 자체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대해 유일하면서도 확고부동한 믿음을 우리 모두에게 선포하여 알려주시고 또한 해석해 주신다. 
 
오직 믿음만이 이성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게끔 해 준다. 이 때문에 사도 바오로는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계획에 찬미를 드리고 있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로마 11,33.36). 
 
베드로의 신앙 위에 예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권한을 주셨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과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권위라는 것은 봉사를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느 위치에 있든지 우리는 베드로라는 주춧돌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도 그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또 진정으로 봉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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