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시에서 아이를 보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아파트 놀이터는 늘 텅 비어 있고, 아이를 보려면 학원에 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사는 송도의 공원에서는 쉽게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젊은 부부가 많이 사는 지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운 여름, 공원의 분수에서 쏟아내는 물을 맞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의 유년 시절과 다른 점을 발견합니다. 우선 보호자가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또래 문화가 중심이었고, 같은 또래와 함께 어울려 뛰어놀았습니다. 지금처럼 부모가 함께 있었던 경우는 없었습니다.
놀이터도 없어서 그냥 공터만 있으면 충분했습니다. 그곳에서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얼마 전에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놀이들을 하면서 하루 종일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매일 놀았는데, 당시 친구들 모두 지금 자기 자리에서 잘살고 있습니다. 물론 어려움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종종 만날 때마다 그때 같이 놀던 이야기를 하며 “그때가 좋았어.”라고 말합니다. 솔직히 요즘 아이를 보면 걱정이 됩니다. 방학이라서 많이 놀고 있냐고 묻자, 오늘도 학원만 여섯 군데를 가야 한다며 한숨짓는 것입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어떤 말을 하게 될까요?
책이나 영화를 볼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스토리입니다. 스토리가 있어야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 삶도 이 스토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스토리를 통해서 신나고 멋진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강조하신 것은 이 스토리입니다. 결코 이 세상 안에서 돈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오르라는 세속적인 길을 강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율법 교사의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시지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질문을 던졌던 율법 교사는 공부만 했던 사람입니다. 문제는 공부만 하니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을 잊어버리고 율법 조항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랑의 길이 바로 우리의 스토리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교회 안에서, 그 밖에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등등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사랑 이야기의 배경은 무궁무진합니다. 그런데도 스토리를 만들지 않아서 늘 사랑을 잊어버립니다. 주님과 함께하지 못한 이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