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키엘 24,15-24
마태오 19,16-22
한 걸음만 더
한 수도 공동체를 방문했습니다.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많은 반성도 했습니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부작용도 큰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지요.
황금만능주의, 출세지상주의, 물질문명의 극치 속에 살아가다보니, 은연중에 눈에 보이는 것만 중시하는 경향이 우리 몸에 배어 있습니다.
교회나 수도공동체 역시 이런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특별하게도 그 수도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창살 안에 가두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손과 발을 결박했습니다.
스스로 문명세계를 등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 평생을 그 좁은 테두리 안에서 마무리 짓습니다.
이분들의 선택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람이 싫어서 그 길을 선택했을까요? 세상에 혐오감을 느껴서 일까요?
그도 아니면 실연이라도 당했을까요? 세상에서 먹고살기 힘들어서였을까요?
그런데 그분들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몸만 가두었을 뿐 그분들의 영혼은 얼마나 자유로워 보였는지 모릅니다.
삶 전체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할까, 얼마나 불행할까, 생각했었는데, 그분들의 얼굴에는 ‘행복해죽겠네’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비록 그분들은 세상을 등졌지만, 그 누구보다도 세상의 아픔과 상처에 민감했습니다.
그분들의 입술에는 세상을 위한 기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보다 완전해지기 위해, 보다 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보다 완벽히 스승 예수님을 닮기 위해,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스스로 그 험한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 때로 알다가도 모를 분이십니다.
때로 한없이 여유로우시고, 끝까지 인내하시고, 모든 것을 수용하시는 분이시지만, 때로 요구가 얼마나 많은 분인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읽은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해온 한 청년에게, 그 지키기 어려운 계명들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하게 지켜온 요즘 보기 드믄 청년에게 큰 상급을 내리시거나 칭찬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욕심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특별히 열심히 신앙생활 해나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하겠지, 더 이상 뭘 더 어떻게 하라고, 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저희 살레시오회의 창립자 돈보스코 역시 자신들의 어린 제자들에게 힘에 부치는 요구를 많이 하신 분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이제 겨우 열두 살, 열세 살 된 어린 소년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애야, 너는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단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깜짝 놀라 이렇게 반문하곤 했습니다.
“신부님, 제게 지금 장난치고 계신 거죠?
나 같은 것이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단 말이예요?”
돈보스코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애야, 성인이 되는 길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네게 매일 주어지는 일과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정성껏 미사에 참석하는 것,
고해성사를 잘 준비하는 것, 그것으로 너는 충분히 성인이 될 수 있단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마음으로 이렇게 다짐하곤 했습니다.
“그래, 나는 반드시 성인이 되고 말거야.”
은혜롭게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화의 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활짝 열려있음을 만천하에 확실하게 공표했습니다.
성인이 되는 길은 더 이상 성직자 수도자의 전유물이 아님을 명확히 했습니다.
성화의 길은 하느님 백성들이면 누구나가 다 접근 가능한 보편적인 길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우리 모두를 성화의 길로 초대하시는 하느님 은혜에 감사드리며, 일상에 대한 충실과 꾸준한 기도생활로 보다 완전함에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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