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구 성직자 사진첩을 보다가 한 선배 신부님의 사진에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신부님과의 만남이 떠올려졌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섬세하시고 또 애정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차 한 잔을 마셔도 제대로 마셔야 한다면서 좋은 찻잔에 정성을 다해 맛있는 차를 만들어 주셨지요. 만약 차를 담을 찻잔이 없으면, 저 같은 보통 사람은 아무 잔이면 어떠냐고 할 텐데 신부님께서는 아예 차를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음식 역시 제대로 된 그릇에 담겨 있어야 맛이 나지 아무 그릇에 대충 담으면 그 음식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람에게뿐 아니라 다른 사물에도 늘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유명한 식당에 가면, 그 음식에 맞게 멋진 접시에 담겨 있습니다. 만약 정말로 비싸고 맛있는 최고급 음식이 플라스틱 접시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음식의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음식에 맞게 접시가 꾸며질 때, 음식의 맛이 더 좋게 느껴지고 실제로 음식 맛도 훌륭해질 것입니다.
이 제각각의 접시에 우리 마음을 대입해 보았으면 합니다. 즉, 주님을 담는 각자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주님을 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모습에 따라 주님의 영광이 더 환하게 세상에 드러날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각자의 마음을 멋지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세상에 어떻게 비추고 있었을까요? 자기 마음의 상태와 모양이 중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를 떠나 이방인 지방으로 가십니다. 그곳에서 어느 가나안 부인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지요. 자기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다는 것입니다. 이 청을 곧바로 들어주셨을까요? 아닙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라면서 거절하십니다. 사람을 강아지에 비유한다는 것, 상당히 모욕적인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은 가나안 부인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변하지 않는 하느님을 향한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함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겸손의 마음이 가나안 여인이 얻고자 했던 치유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바로 주님을 담는 마음으로 언제나 주님과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자기 믿음을 훌륭하게 드러냅니다. 그런 멋진 마음이 주님의 영광을 세상에 보일 수 있었으며, 이로써 자기가 원하는 딸의 치유도 얻게 됩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런 그릇이 될 때, 가장 멋진 주님을 모시면서 주님의 영광을 세상에 잘 드러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