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지혜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라고 말하면서 가리켜 보십시오. 손가락 하나는 그를 분명하게 향하고 있지만, 손가락 세 개는 자기를 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상대방이 나쁘다고 말하는 순간, 자기는 세 배 나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에 관한 판단과 단죄를 멈추지 못합니다. 늘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을 하기에 앞서, 최소한 3번은 자기를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손가락 하나만 상대방을 향하고, 세 개의 손가락은 계속해서 나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신독(삼길 신愼, 홀로 독獨)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혼자 있을 때 삼가고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스스로 절제하며 옳은 길을 걷는 사람은 함께 있을 때도 좋은 모범을 보입니다. 그러나 혼자 있는 모습에서 겸손하지 않고 함부로 막 한다면 남들 앞에서의 모습이 진짜가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삶만을 따르면서 그저 남들만큼만 할 생각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남들처럼만 살라고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유한 ‘나’의 삶을 살라고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비교, 판단, 단죄의 삶이 아닌, 인정, 지지, 칭찬이라는 나의 멋진 삶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손가락 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헤로데 영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는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헤로디아의 농간에 농락되어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잘랐지요. 우선 그의 잘못은 헛된 맹세에서 시작했습니다. 자기 생일잔치에 헤로데의 고관들과 갈릴래아의 유명한 인사들이 초대된 자리에서 기분이 너무 좋아 헛된 맹세를 한 것입니다. 어떤 청이든 다 들어주겠다는 맹세였습니다. 이때의 청이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는 것이었지요.
군주가 손님들을 초청해서 화려한 잔치를 벌이는 것은 그들에게 자기 권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예수님의 소문에 죽은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하면서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나바테아 왕녀를 소박한 것이 빌미가 되어 나바테아 왕의 공격을 받아 패배하게 되었고, 전쟁 패배로 인해 로마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을 가서 죽게 됩니다.
세상의 눈치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주님의 뜻인지를 살피면서 그 뜻에 맞게 열심히 사는 고유한 ‘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눈치는 순간의 만족만을 주지만, 주님의 뜻을 따르면 영원한 생명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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