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6,60ㄴ-69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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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당연히 생각하는 뇌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뇌과학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뇌가 그리 똑똑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또 복잡한 것 같지만 너무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뇌를 속이기가 쉽답니다.
우선 뇌는 진짜 행복과 가짜 행복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가짜로 웃고 있는데도 뇌는 ‘지금 행복하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가짜로 울고 있거나 자주 화를 내고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되면, ‘지금 불행하구나’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실제로 행복과 불행의 느낌은 평소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뇌가 어떻게 받아들이냐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떻게든 웃고, 어떻게든 긍정적인 말을 행동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뇌가 ‘지금 행복 중’이라고 표시합니다. 이렇게 웃음 짓는 사람 곁에 어떤 사람이 함께하고 있을까요?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함께 다니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함께하게 됩니다.
‘죽고 싶다. 환장하겠다. 미치겠다. 화가 너무 나.’
이런 말로 가장 힘들어지는 것은 결국 ‘나’뿐입니다. 뇌는 불행을 말하는 사람에게 ‘불행’을 기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왜 부정적으로만 생각할까요? 진짜로 손해 보는 것 같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뜻은 곧 사랑의 삶입니다. 기쁨과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무조건 내게 도움이 되는 삶입니다. 주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만을 보고 있기에 신앙 자체를 포기할 뿐입니다. 결국 손해는 온전히 자기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요한 6,41)의 말씀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말씀을 하셨지만, 그들은 육적인 말씀으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영원한 생명을 본성으로 하고, 육적인 것은 썩어 없어지는 것을 본성으로 합니다. 그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거북한 말씀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수준 낮음은 생각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완고함을 통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손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자신에게 그 손해가 온전히 돌아갈 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모범으로 보여주셨던 그 모든 것은 철저히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으로 믿음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긍정적인 행복의 마음이 진짜 행복을 내게 전해줄 것입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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