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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3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4-23 조회수 : 295
복음: 루카 24,13-35: 엠마오의 제자들 
 
오늘 전례에서도 파스카의 의미를 신앙의 빛에 비추어 알아들으려 하는 노력하고 그 부활체험을 증거하여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즉 성령강림이 주님의 부활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고 한다. 즉 주님이 부활을 통하여 하느님께 올라가 성령을 부어주실 수 있었다는 말이다. 베드로 사도는 그러기에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느님 사랑의 계획의 도달점은 바로 우리 자신이며 그것이 성경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잘 알아듣고 묵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 예로니모가 “성경을 무시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Comment. in Isaiam. Prol., PL 24,17; 계시 27)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는 구약성경의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권위 있는 해석을 하고 계시다. 부활 날, 두 제자가 실망에 가득 차 엠마오로 가면서 그때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 어떤 낯선 사람이 동행하며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때 제자들은 그들이 기대했던 바가 모두 무너져 침통하다는 말을 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사형당함으로써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사흘째나 되었다는 것은, 희망이 없다는 의미이다(21절). 두 제자와 다른 모든 사람이 어떤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는지 나타나고 있다. 강력한 메시아를 기대하였지만, 십자가의 일은 정반대의 일이었다. 여기에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성경이 어떻게 예언하였는가를 깨우쳐 주신다(25-27절). 그러기에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사건은 하느님 계획의 일부였으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 성경의 예언은 하느님의 옳으심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유다인들과 제자들은 성서의 말씀을 왜곡하고 편리하게 해석하여 참 의미를 외면함으로써 멋대로 해석하였다는 것을 꾸짖고 계신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성경의 참된 의미를 되찾아 주신다. 이렇게 하여 성경의 본래 의미가 되살아난다. 이렇게 신앙의 메시지로서의 성경의 말씀은 오직 믿는 마음을 통해서만이 그 풍부한 의미를 다 드러낼 수 있다. 
 
예수께서 성경에 관해 설명해 주실 때에 두 제자는 이 모든 것을 체험한다. 그들은 그 낯선 동행인이 나자렛 사람 예수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32절). 이는 우리가 신앙 안에서 성경을 받아들일 때, 성경은 그리스도와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이 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엠마오의 제자들에게서와같이 가장 권위 있는 주석가가 될 것이다. 
 
또한, 성경과 더불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표지가 바로 성체성사이다. 두 제자에게 낯선 여행자가 초대되어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성체성사를 암시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30절). 성체성사를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이때 제자들이 예수를 알아보고 있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님의 모습은 사라졌다고 기록하고 있다(31절). 제자들은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제자들에게 “빵을 떼실 때 그분을 알아보았다.”(35절) 한다. 이것으로 믿음은 인간에게 파스카 신비를 열어 보여줄 뿐 아니라, 믿음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그 행위의 결실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부활과 만남을 전제하면서 동시에 그 부활을 일으키기 때문에 부활의 원인이며 또한 결실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표징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우선은 성경 말씀을 신앙으로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이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장이 되며, 그 안에서 성경에 대한 주석가는 가장 권위 있는 예수님으로 모시게 될 것이다. 그 성경이 이제부터 나에게 있어 생명의 말씀으로 살아있게 된다면 말이다. 또 하나는 성체성사의 표지이다. 이는 이제 우리가 성체를 이루는 삶을 살면서, 우리 자신을 나누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삶을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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