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6,16-21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의 16 제자들은 호수로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 18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
19 그들이 배를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쯤 저어 갔을 때,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2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1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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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정신없이 바쁩니다. 조금 쉬면서 일하라고 하면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삶을 즐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삶의 여유가 생겼을 때 즐겼던 것보다, 삶이 고단할 때 마주한 아름다움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시간이 더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멈췄지만, 그전에는 일 년에 한두 번 꼭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출발 전까지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제가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지순례를 다녀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성지순례를 통해 얻은 힘으로 더 열심히 그리고 힘차게 살 수 있었습니다.
삶이 고단할 때 오히려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나의 삶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만드는 시간임을 깨달을 때 지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여유’가 지치지 않는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이 열정적인 삶을 만듭니다.
우리의 삶을 주신 하느님의 뜻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보시니 참 좋았다’라고 하신 하느님이셨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해야 ‘보시니 참 좋은’ 참이 될 수 있을까요? “힘들어, 어려워”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고단하게 만드는 삶이 아닙니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만드는 삶이어야 좋은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유보다 아름답고 소중한 삶을 지금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주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이라는 점을 기억하면서, 지금의 자리에서 주님을 찾고 그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내 가족이 나의 주님이며, 이웃이 나의 주님이며, 지금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의 주님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그 어디서도 누리지 못했던 진정한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둠 속에서 작은 배에 탄 채 거센 바람과 높은 물결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물 위를 걸어오는 것이 보입니다. 이 모습에 제자들은 주님이 아닌 유령인 줄 알고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 상황이 지금의 우리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센 바람과 높은 물결과 같은 고통과 시련으로 시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주님과 함께하기 위해 다가와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움 속에 빠질 뿐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 뵙고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자,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을 알아 뵙고 함께 하려는 마음만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과 함께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을까요? 아무런 힘도 없는 것에만 집착하며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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