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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4-20 조회수 : 560

요한 3,31-36 

태양에 반응하지 않으면 생명체가 아니다 

 

 

영화 ‘더 레슬러’는 1980년대에 활동했던 프로 레슬링 스타인 랜디 로빈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랜디는 예전에는 레슬링계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지만, 그의 몸은 나이와 건강 문제로 인해

점점 약해져 가고 경기도 이전보다는 덜 하게 됩니다. 

 

평생 레슬링에 몸을 바친 랜디는 아내도 없고 딸도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으며 세상에서 혼자가 되었습니다.

돈도 없어서 컨테이너에서 사는데 그마저 월세도 밀린 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랜디는 소규모 관객을 대상으로 레슬링 경기를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다시 되돌리고자 합니다.  

 

하지만 의사는 심장에 무리가 와서 더는 레슬링을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는 레슬링 아닌 곳에서 안식처를 찾지만 찾지 못합니다. 아이 하나 딸린 술집 여자만이 그에게

관심을 가져줍니다.

그리고 그녀의 응원으로 딸과의 관계도 회복시켜보려 합니다.

그러나 관계란 것이 틀어질 때도 있기 마련인데 랜디는 딸과 연인과의 관계 모두를 다시 엉망으로 만듭니다.  

 

랜디는 다시 무대에 나섭니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죽기를 원합니다.

이미 그를 응원하는 함성소리가 크게 울려퍼집니다.

그를 걱정하여 온 애인이 무대에 오르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랜디는 여자의 말을 뿌리치고 무대로 오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환성소리를 지르며 천천히 죽어갑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미키루크는 80년대를 풍미했던 꽃미남 영화배우였습니다.

하지만 마약과 교통사고 후 망가진 얼굴로인해 삶이 추락해버렸고 이후 성형수술로 얼굴 복원 수술을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해서 지금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속 주인공의 설정은 사실상 현실의 미키루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하늘 아니면 땅입니다.

땅은 우리가 본래 생겨난 곳입니다.

랜디에게는 링입니다.

거기서 벗어나려 해도 다른 곳에서의 안식처가 그 링의 유혹을 이길만큼 크지 못합니다.

그는 이전의 영예도 다시 느끼고 싶고 애인이나 딸과의 관계도 잘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욕심이었고 그러다 다 망쳐버렸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어쩌면 하늘과 땅은 영원히 만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음을 몰랐을 수 있습니다.

애인에게 가기 위해서는 링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극단적인 이원론일 수밖에 없습니다.

통합이니 뭐니 하는 소리에 휘둘리면 안 됩니다. 극단적 이원론 시각으로 볼 줄 알아야 올바른 선택이 가능하고 그래야 구원을 받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에 계십니다.

땅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어쩌면 “하느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하늘에만 계십니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라고 하십니다.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섞일 수 없는 분이란 뜻입니다.

주님의 기도에서도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합니다.

왜 땅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으실까요?  

 

사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는 곳이 땅입니다.

땅이란 하느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하느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공간이 있을까요? 인간의 자유의지로 하느님의 영향을 단절한 곳이 존재합니다.

그곳이 우리 마음일 수도 있고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지옥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예가 있습니다.

태양은 모든 나무에 빛을 줍니다.

하지만 죽은 나무 속으로는 빛이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합니다.

땅은 그러한 곳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은 하늘과 하늘이 된 존재에게만

함께 머무시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난 존재는 어떨까요? 빛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빛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그 사람 안에 들어가 열매를 맺는다면 그 사람은 하늘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죽은 나무처럼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땅에 속한 존재인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구원과 멸망이 결정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꽃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태양에 반응하고 바람에 흔들립니다.

하느님 말씀에 반응하고 흔들린다면 아직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카리옷 유다처럼 흔들리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간다면 죽은 것입니다.

죽은 고목에 아무리 태양 빛을 쬐여도 그것은 살아나지 못합니다.  

 

하늘 아니면 땅입니다.

빛 아니면 어둠입니다.

생명 아니면 죽음입니다.

천국 아니면 지옥입니다.

둘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하늘의 것이 되려면 생명을 갖는 수밖에 없습니다.

땅의 것을 포기하고 하늘로 오르는 나무처럼 되어야 합니다.

바람에 흔들리고 빛에 반응할 때 그 생명은 땅에서 낳지만 하늘의 것이 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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