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요한3,7)
'역설의 삶을 살아 내자!'
오늘 복음(요한3,1-8)도 '예수님과 니코데모와의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신 자신의 신원과 우리의 영원한 생명(구원)을 위해 돌아가신 당신의 십자가 사건을 언급하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3,13-15)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위로부터의 태어남'은 곧 '십자 나무를 통해 들어 올려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라는 역설을 선포하십니다.
'세상과 나라와 공동체가 시끄러운 이유!'
'왜, 그럴까???'
역설이신 하느님,
역설이신 예수님,
역설이신 성령님의 부재(不在)가 그 결정적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4,32.34)
루카 사도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충만함의 모습'이며, '자기희생이라는 하느님의 역설이 가져다 준 은총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어제 근처 통영을 다녀왔습니다. 미륵산에서 '한산도 제승당'을 바라보면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정신', 곧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라는 정신으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세상과 나라와 공동체가 시끄러운 이유는 바로 이런 '이순신 장군의 역설이 부재(不在)'한 까닭이지 않을까요?
(~ 2열왕 6,23)
(이병우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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