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24,13-35
언젠가 우리 눈이 활짝 열리게 될 때 얻게 될 영적인 은총!
전통적으로 저희 수도자들은 부활 대축일 다음날 엠마우스 소풍을 떠납니다.
저희 공동체도 오랜만에 서해 반대쪽 동해로 엠마우스 소풍을 왔는데, 토네이도 못지않은 강풍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주님과 함께 걸은 두 제자의 은혜로운 체험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클레오파스라는 제자와 다른 한 제자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 등장하셨지만, 두 제자는 예수님임을 알아뵙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두 제자의 눈에 뭔가에 가리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제자의 눈을 가린 가림막은 무엇이었겠습니까?
너무나도 당연히 예수님 죽음으로 인한 낙담과 좌절, 그리고 예수님 불신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두 제자와 함께 길을 걸어가십니다.
길을 걸어가시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시기도 하고, 성경 전반에 걸쳐 가르치시기도 하고, 그렇게 몇 시간을 함께 걸어가셨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예수님께서 두 제자만을 위한 말씀의 전례를 거행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질문도 던지시고, 그에 대한 토론도 나누시고, 답변도 해주십니다.
두 제자의 무지와 불신에 다그치기도 하시고, 격려하기도 하십니다.
구약의 예언서에 대해 자상히 설명도 해주시고,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소상히 가르쳐주셨습니다.
두 사람만을 위한 말씀의 전례가 끝날 무렵, 날이 저물고 해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과 두 제자는 한 숙소에 들어가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드디어 성찬의 전례가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빵을 떼시는 순간, 두 제자의 눈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바로 당신 앞에 계신 분이 돌아가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스승님께서는 홀연히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홀연히 사라지신 후 두 제자의 고백이 의미심장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복음 24장 32절)
우리 역시 매일의 미사 중에 말씀의 전례 가운데 온몸과 마음으로 정성껏 말씀에 몰입할 때,
자연스레 우리 마음은 엠마오로 걸어가던 두 제자처럼 뜨거워질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으로 인해 뜨거워지고 열렬해진 우리 마음을 안고 성찬의 전례로 넘어갈 때, 우리는 빵과 포도주 안에 생생히 살아계시고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뵙지 못하도록 우리 눈을 가리고 있는 장애물은 어떤 것인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언젠가 우리 눈이 활짝 열리게 될 때 얻게 될 영적 은총은 어떤 것인지 기대해봐야겠습니다.
우리 눈에 어두운 장막이 걷히게 될 때,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것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자취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죽어가면서도 행복한 얼굴로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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