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28,1-10: 부활하신 예수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다
“이날은 주님께서 만드신 날 우리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 117,24).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성야를 지내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의 증언을 강조하는 것과 그들이 무덤으로 갔다는 것과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났다(9-10절)고 전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복음에서처럼 주님의 몸에 기름을 바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덤을 보러(1절) 갔다. 그들은 거기서 빈 무덤을 보게 된다. 이것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고한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마태오는 이 증언을 여인들의 증언에 따른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맨 처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것을 전했다는 것은 그들의 믿음, 순수함 또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보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도들은 어땠는가? 겁에 질려있었고 그 여자들의 증언을 믿기보다는 헛소리 정도로 생각하였다(참조: 루카 24,11).
그 여인들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엎드려 절하였다”(9절). 이 행위는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며, 그분을 손으로 포옹할 듯 넘치는 기쁨과 환희를 나타내는 것으로써 그분이 진정 다시 살아나셨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예수께서 여자들에게 먼저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신 것은 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중요성 때문이 아니라, 신앙의 선포에 있어서 사랑과 기쁨이 우선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기쁨의 주제는 처음부터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순간에 겁에 질린 경비병들의 모습과 여자들에게 주어지는 기쁨은 큰 차이가 있다. 마음의 상태가 달라서 그렇다. 여자들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찾고, 이미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부활해 계신다. 그러나 그분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그들을 단죄하고 심판하기 때문에 그분이 영원히 죽어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여자들이 두려웠던 것은(8절)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일을 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기쁨에 사로잡혀 “무서우면서도 기쁨에 넘쳐”(8절)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러 달려간다. 여기서 마태오는 기쁨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부활체험이라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기쁨에 넘치는 일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될 때 가능한 체험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을 때, 바로 부활하신 그분이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 전체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본받도록 해야 한다. 세례로 그분과 함께 묻혔다면, 그분의 생명을 누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위해 사는 자세를 의미한다고 바오로 사도께서는 말씀하신다.
오늘 우리는 독서와 복음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행위와 업적을 통하여 보여주신 놀라운 구원의 파노라마를 묵상할 수 있었다. 천지창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은 당신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절정을 이루는 순간은 바로 세상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시고 십자가 위에 죽게 하시며 또 부활시키신 이 사건이다. 또 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당신을 온전히 바치신 아들의 순명, 즉 아버지께 대한 완전한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이신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인류에게 보여주신 가장 큰 계시요, 인류를 위한 가장 큰 역사라고 할지라도, 이 부활사건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활하신 주 예수의 모습은 바로 영광스럽게 될 우리의 모습이어야 하며, 그 부활의 신비는 우리 안에서 드러나야 하며, 선포되어야 하는 신비이다. 영광의 주님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십자가라는 큰 대가가 지불된 사건이다. 우리가 전할 부활의 신비도 우리 자신이 지고 가는 이 십자가를 통하여 드러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자의 삶이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하여 하느님의 뜻을 어기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결국은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이길 수 있다면, 거기에 따르는 보상은 백 배의 보상이 될 것이며, 그것은 큰 기쁨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부활을 잘 지내는 것은 진정으로 나 자신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서, 나 자신이 주님 안에 다시 태어나는 삶이 될 때 부활을 잘 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자신을 이기기 위한 부단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때, 우리는 부활을 체험할 수 있고, 그 기쁨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미사 중에 우리의 삶이 참으로 부활의 신비를 힘차게 선포하는 삶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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