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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2-06 조회수 : 566

창조의 협력자 
 
  
신발을 판매하는 회사가 새로운 판매처를 찾다가 아프리카로 두 명의 영업사원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 판매를 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두 사람은 아프리카에 도착하여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회사로 돌아와 보고했습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프리카에 가니 그곳 원주민들은 신발을 전혀 신고 있지 않아서 신발을 팔수가 없습니다.” 
 
사장은 곁에 있던 다른 사원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맞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아무도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신발을 신으면 얼마나 좋고 편한지를 알려 준다면 아프리카의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의 고객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일한 곳을 탐방하고 왔지만 한 사람은 불가능을, 다른 한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던 것입니다. 
신발은 누구를 통해 아프리카에 생겨나게 될까요?
아프리카 사람들이 신발을 신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을 통해서입니다. 
 
창조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만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온전히 이루어 질 수 있음을 믿는 누군가가 받아주어야만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창조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칫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냥’ 말씀으로 빛도, 공간도, 사람이 살 육지도 만드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남자 혼자서 아기를 낳을 수 없기에 협조자인 여자를 만들어 주셨듯이, 하느님의 창조에도 항상 협조자가 존재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물!’이라고 외치면 물이 생깁니까? 아무 변화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옆에 있다가 물을 한 잔 가져다주면 내 앞에 없던 물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입니다. 
하느님은 절대 혼자서 고독하게 창조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창조자를 ‘지혜(소피아)’라고 말합니다.
잠언에 의인화된 ‘지혜’가 창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읽어보면 흥미로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나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산들이 자리 잡기 전에, 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그분께서 땅과 들을,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그분께서 위의 구름을 굳히시고 심연의 샘들을 솟구치게 하실 때, 물이 그분의 명령을 어기지 않도록 바다에 경계를 두실 때, 그분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잠언 8,22-31) 
 
따라서 오늘 독서에서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줄 첫 번째 피조물이신 온 천지만물과 인간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느님은 누군가의 협조 없이 절대 아무 것도 하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여 이 세상에 모든 피조물들이 태어나도록 그 말씀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신
그 ‘지혜’의 단서가 바로 창세기 1장 2절에 등장합니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땅’은 성경에서 ‘여인’을 상징합니다. 그 여인과 관계되는 것은 하느님의 영인 성령입니다.
성령께서는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물’과 관계있습니다.
여인이 성령으로 가득하여, 그 성령의 열매인 믿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일 때야만 말씀이 열매를 맺어 새로운 무엇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줄 성령으로 가득한 이 첫 번째 피조물인 ‘지혜’를 교회 학자들은 모두 ‘성모 마리아’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나중에 태어나셨지만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계신 분이신 것처럼,
그분을 낳으신 마리아 또한 시간을 초월하셔야 함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어머니로부터 인성을 받으신 분인데, 어머니가 없이 그리스도를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부 에프렘은 이 구절을 주석하면서 물이 불로 따듯해지는 것처럼, 또 암탉이 달걀을 따듯하게 품어야만 알에서 병아리가 탄생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신 어떤 어머니와 같은 존재를 통해 창조가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암브로시우스는 성령의 도움으로 씨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는 것이 창조라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영을 내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당신께서는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십니다.”(시편 104,30) 
 
그리고 성경의 주보성인인 히에로니무스는 이 구절이 ‘세례’를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참조: 교부들의 주해) 
 
하느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창조하실 때 성모님의 ‘믿음’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던 것처럼, 창조는 하나의 ‘열매’입니다. 
‘씨’(말씀)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땅’(어머니)이 있어야 하고 ‘물과 따듯함’(성령)도 있어야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하시는 것은, 말씀이신 당신을 받아들인 성모님을 통해 교회가 탄생, 즉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모든 창조된 것들은 그 안에 무언가가 들어와 열매를 맺게 창조되었습니다.
빛과 공간과 땅이 창조되었다면, 그 안에 해와 달과 별, 새들과, 짐승들이 채워지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인간 또한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누군가를 받아들여야 하는 목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스스로 완전하다고 참 주인이신 ‘말씀’이 들어와 열매 맺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아직 창조가 끝나지 않은 불량품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창조 당하고 창조에 협력하는 인간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태초의 창조의 협력자로서
그분의 깨끗함 덕분으로 성령님을 충만히 지니고 계셨던 성모님의 모델을 닮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가장 완전한 창조의 협력자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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