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를 봉헌하지 않으면 자녀는 어떻게 될까?
‘유퀴즈’에서 이천 시골에 사는 한 어머니(이정숙 씨)의 사연에 진행자들도 눈물을 참지 못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서울에 살던 어머니는 시골에 사는 한 남자의 끈질긴 구애 끝에 시골로 시집옵니다.
친정어머니는 딸을 시골로 보낼 수 없다며 강력히 반대했지만, 서울로 올라와 살 것이라는 사위의 말을 듣고 시골로 시집보낸 것입니다.
자신에 셋째가 부모를 모실 필요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자기 형이 다리에 장애가 있고 아이들이 일곱이라 지금 자기가 분가해서 밖으로 나가면 시어머니, 시아버지, 조카들까지 다 업신여김받고 살기 어려울 것이라 하여 조카들 클 때까지만 함께 시골에 살자고 설득했습니다. 어머니는 남편의 효심에 그러자고 하였고 지금까지 평생을 시골에 살게 되었습니다.
시골에 살면서 힘든 일이 참 많았습니다.
둘째 아들이 부패한 백신을 맞아 오히려 결핵에 걸려 아이를 업고 여섯 달 동안 매일 업고 통원 치료를 해야 했습니다.
매일 아이를 업고 걸어야 했던 시간이 무려 네 시간입니다.
친정어머니가 서울에 계시다 딸이 고생하는 것을 볼 수 없다며 도와주겠다고 시골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러나 사돈과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이 아니라며 8km나 떨어진 곳에 집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딸의 집에 와서 손주들을 돌봐주시고 일을 도와주셨습니다.
임종 전날 어머니를 방문하셨을 때도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얼른 가서 사슴 밥 줘라. 나 때문에 이렇게 시간 뺏기면 어떡하냐!”
이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 모습에서 당신을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한 시골 집에 봉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봉헌은 어머니의 피 흘림이었습니다.
따님은 그렇게 한 가정에서 훌륭한 며느리요, 아내요, 어머니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성모 마리아와 요셉 성인께서 예수님을 성전에서 봉헌하신 날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인간의 부모가 자신들의 아들을 하느님 집에 봉헌하는 것이 무엇이 중요할까요?
이는 인간이 그 부모의 봉헌을 통해 성장함을 말해 줍니다.
부모가 봉헌하지 않으면 자녀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가 성장하여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결혼하겠다는데도 반대합니다.
이것은 자녀를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내 품 안에 품고 살겠다는 뜻입니다.
좋은 것 같지만 실제로 자녀가 성장하지 못하게 봉헌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가 자녀를 나라와 천주께 봉헌하는 편지는 이렇습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조소 거리가 된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분노를 짊어지고 있어야 한다.
네가 상소한다면 그것은 목숨을 구걸하고 마는 것이 된다.
네가 국가를 위하여 이에 이르렀는즉 죽는 것이 영광이나, 모자가 이 세상에서는 다시 상봉치 못하겠으니 그 심정을 어떻다고 말할 수 있으리…. 천주님께 기원할 따름이다.”
조 마리아의 편지가 원본이 없다는 이유로 거짓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안중근의 담당 간수였던 헌병 치바 도시치가 전한 말을 사이토 다이켄이라는 일본 스님이 『내 마음의 안중근』(1994)이라는 책에 기록한 내용과 유사하고, 황성신문 (1909년 12월 28일) 기사에서도 그 내용이 있습니다.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편지 자체가
거짓이라고 말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건 조 마리아는 아들 안중근을 천주와 나라에 봉헌하였고 그는 그렇게 성장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봉헌하지 않으면 아들은 어머니라는 감옥에 갇혀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부모는 자녀를 어디로 봉헌하는 것일까요? 새로운 정체성으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나의 자녀에서 나라의 자녀, 하느님의 자녀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체성은 또한 내가 누구냐는 믿음입니다.
사람은 믿는 대로 성장합니다.
어머니는 내가 가진 아들을 향한 믿음에서 자녀를 하느님의 자녀라는 믿음으로 보내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믿는 만큼 성장합니다.
1990년경 에렌 랭거(Ellen Langer) 박사는 70대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그들에게 1959년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전반적으로 5년 정도는 젊어진 모습이 되었습니다.
혹은 ‘아이는 부모가 믿는 만큼 자란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컴퓨터 게임 중독자인 아들을 끝까지 믿어주어 연세대 4년 장학생으로 입학시킨 『괜찮아 엄마는 널 믿어』의 저자 김민경씨입니다.
그런데 왜 어머니, 아버지만이 자녀를 봉헌할 자격이 있을까요? 그 이유는 자녀는 부모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봉헌은 나의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낳고 자신들이 키웠으니 자녀는 자신들의 것입니다.
자녀들도 부모에게 속해 있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아무리 봉헌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천민 아이를 사무라이로 만들겠다고 한 어머니는 자신이 성의 기둥으로 들어가 죽었습니다.
다른 어떤 이가 들어가도 자녀는 사무라이가 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가능합니다.
이 배가 가라앉아야 어쩔 수 없이 다른 배로 옮겨 탈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 배에 계속 머무르려 할 것입니다.
새끼 새를 자신이 떨어뜨리면 새가 날갯짓하겠지만, 다른 존재가 떨어뜨리려고 다가오면 몸을 움츠리게 됩니다.
봉헌은 부모만의 특권이기도 하고 부모의 가장 중요한 의무입니다.
내가 자녀를 봉헌하지 않으면 자녀는 어떤 방향으로도 성장할 수 없음을 기억합시다.
자녀의 성장은 부모가 어디로 봉헌하느냐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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