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우리를 죄짓게 하는 이 '세상'
‘아바타’라는 영화를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것입니다.
가까운 미래, 지구는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나먼 행성 판도라에서 대체 자원을 채굴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판도라의 독성을 지닌 대기로 인해 자원 획득에 어려움을 겪게 된 인류는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 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 원격 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 ‘아바타’를 탄생 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합니다.
한편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는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가할 것을 제안 받아
판도라에 위치한 인간 주둔 기지로 향합니다. 그 곳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된 제이크는 자원 채굴을 막으려는 나비의 무리에 침투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습니다.
임무 수행 중 나비의 여전사 네이티리를 만난 제이크는 그녀와 함께 다채로운 모험을 경험하면서 네이티리를 사랑하게 되고,
지금까지 자신이 일해주고 있었던 인간들이 한 평화로운 세계를 파괴하고 자원을 갈취하려는 나쁜 무리들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가끔 우리도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제이크는 나비족을 구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누렸던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요? 더 이상 인간 친구들이 하나도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 제이크는 인간이기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이 세상 전체를 등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한 쉰들러가 그러했을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이 자신이 살고 싶지 않은 방향으로 자신을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쉽게 그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엄청난 용기를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쉰들러는 자신이 독일인이지만 독일인들에게 적이 되고 쫓기는 신세가 될 것을 감수하며 유태인들을 구해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자!’,
그 사람이 한 사람이라면 저는 ‘하와’를 연상합니다.
하와는 이 세상에 자신을 외롭지 않게 해 줄 유일한 짝입니다.
그러나 그 하와가 들고 있는 것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입니다.
만약 내가 그 열매를 받아먹지 않으면 하와는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와는 아담을 죄짓게 했습니다.
하와는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우리를 죄짓게 만드는 일이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세상’이 우리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들고 우리 옆에 서 있는
하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와와 함께 사는 한 결코 하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마귀, 육신과 함께 ‘세상’을 인간이 싸워야 할 원수로 가르쳤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다가는 세상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북한 체제에 대해 모두 찬동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런 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무언가를 잃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체제 속에서 그 체제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우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 체제 속에서 살다 죽었다면 그 사람은 그 체제가 받게 될 벌을 같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은 우리를 자신의 삶의 방식대로 살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자기 자신을 위해 이기적인 인간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남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라고 가르치고, 돈과 권력과 명예와 힘을 찾으라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이 세상은 언젠가는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를 죄로 이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 깊이 빠져 사라지게 될 바빌론, 이것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또 큰 능력을 지닌 한 천사가 맷돌처럼 큰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며 말하였습니다.
‘큰 도성 바빌론이 이처럼 세차게 던져질 터이니 다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계시 18,21)
그렇다면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당당히 이 세상과 맞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이 세상과 맞서 싸워 이기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우리가 이 세상의 조류 안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과 함께 멸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세상은 부자가 되기를 강요할 때 예수님은 가난해지기를 원하셨고, 이 세상이 명예를 찾을 때 예수님은 멸시를 찾으셨고, 이 세상이 편안함을 찾을 때 예수님은 고행과 희생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만이 이 세상, 즉 바빌론과 함께 멸망하지 않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다고 이 세상에 순응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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