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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10-12 조회수 : 650

하느님은 우리를 낮추시는가? 
 
 
‘가을동화’(2000)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어린 준서가 태어난 동생을 보기 위해 신생아실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 후 신생아실 침대에 누워 있는 자기 동생과 다른 아이의 이름표를 바꿔 놓습니다. 
다른 아이가 더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그 후 14년, 은서는 중학교 1년생 준서는 3학년입니다.
윤 교수 부부의 사랑을 받으며 두 아이는 남매로서 행복하게 생활합니다.
둘은 정말 행복한 남매입니다.
그러나 서툰 자전거 솜씨로 준서를 쫓아가던 은서가 차에 치이면서 준서와 은서의 행복은 깨지고 맙니다. 
 
부모와 혈액형이 둘 다 O형인데 은서는 B형인 것입니다.
추적해 본 결과 은서는 작은 식당을 하는 순임네 딸이었습니다. 
은서는 그동안 순임네 딸인 줄로만 알았던 신애와 자리를 바꾸게 됩니다.
신애는 14년 동안 가난하게 산 것에 대해 복수라도 하듯 은서를 따돌립니다.
은서는 생일에 외톨이가 되어 홀로 바닷가에 갑니다.
그런데 오빠는 신애의 생일에 있지 않고 홀로 있을 은서를 찾으러 바닷가에 온 것입니다.  
 
남매는 남자와 여자라고 하더라도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둘이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어쨌거나 한 명은 그 집에서 나가야 합니다.
가을동화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사랑 이야기가 되기 위해 은서는 몹시 가난하고 험한 곳으로 쫓겨나야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지적하십니다.
그러자 율법학자들은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루카 11,45)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모욕’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라는 신랑 앞에서 그들이 신부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신부가 될 수 없다면 창조자의 본성에 참여할 수 없게 됩니다.
창조자만 영원합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아드님을 지옥까지 낮추셨습니다.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느님 자녀를 낳으려면 하느님께서 한 분은 남자가 한 분은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자는 남자의 역할이 있고 여자는 여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여자의 역할은 한없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이 낮아짐이 없이는 창조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창조는 양과 음, 하늘과 땅이 만나 역동적인 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자녀를 임신하기 위한 부부의 관계와 같습니다. 여기서 여성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녀의 관계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 왜 아드님을 지옥의 고통까지 떨어뜨려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극과 극이 만나지 않으면 창조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앞에서 낮아지는 모욕을 당하더라도 우리는 당연하다 여겨야 합니다.
그분이 진리이시면 우리는 거짓이고 그분이 빛이시면 우리는 어둠입니다.
그분이 선이시면 우리는 악입니다.
이것이 거북하면 그분과의 결합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창조자의 신부가 되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루르드의 샘물은 수많은 병자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기적의 물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의 샘물이 어떻게 솟아나게 되었는지 알면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모욕당하는 것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성모님께서 베르나데트에게 아홉 번째 발현하셨을 때 성모님께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딸아, 지금 샘으로 가서 그 물을 마시고 몸을 씻어라. 그 가까이에서 자라는 풀을 먹도록 해라.” 
 
베르나데트는 성모님께 순종하였습니다. 당시 그곳은 시체를 태우기까지 하는 매우 더러운 곳이었습니다.
그 흙탕물을 먹고 거기에 난 풀을 먹고 그 물로 자기 얼굴과 손을 씻는 일은 사람들이 보기에
미친 아이가 되는 모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순종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미친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지만, 그 자라에서 샘물이 솟았습니다.
지금도 하루에 120,000만 톤이 솟습니다.
그 물을 마시고 베르나데트는 천식이 치유됩니다. 이후에도 수많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고통과 멸시를 요구하시는 이유는 당신 창조자의 본성에 우리를 참여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고통과 멸시와 낮아짐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주님 앞에서 고통과 낮아짐은 창조와 구원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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