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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9-14 조회수 : 739

십자가의 힘을 무력화하는 유일한 방법: 일상에 감사하지 못하게 하라. 
 
 
KBS ‘안녕하세요’ 75회에서는 매달 핸드폰 결제로 100만 원 이상 사용하여 편의점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4년 동안 빚만 3,500만 원을 떠넘긴 28살 딸이 나왔었습니다. 
딸은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만드는 것일까요?  
 
딸이 소액 결제를 하는 이유는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빚만 남기고 집을 나가 엄마는 자녀들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에게 유일한 위로였던 강아지가 아플 때 엄마는 돈이 없다고 강아지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강아지를 병원에 데려갔더라도 죽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딸은 자신과 같은 처지인 강아지를 열 마리씩이나 데려왔고 자신은 애견 미용사가 되었습니다.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공허함은 디지털 기기를 모으는 취미, 폭식, 문신하고 게임을 하는 것 등으로 풀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나무라는 엄마에게 딸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엄마인 게 창피해.”
엄마는 딸만 바라보며 뼈 빠지게 일하며 살았는데 딸에게 돌아온 것은 원망과 빚문서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딸 안에 부모에 대한 원망이 깊이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딸은 더 엄마를 아프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기 아픔이 엄마의 탓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엄마가 딸을 위해 진 십자가는 의미를 잃게 됩니다. 딸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피로 자녀의 자아가 죽고 새로 태어나려면 먼저 그 피를 받기 전에 행복하여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일상에서의 감사를 회복하는 노력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십자가는 인류 구원의 핵심적 열쇠입니다. 십자가가 구원이 되려면 그 희생이 나 때문이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요한 3,14)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들어 올린 뱀처럼 들어 올려져야 하는 이유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물었던 불 뱀 때문이었습니다.
이 불 뱀 때문에 예수님께서 들어 올려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뱀의 형상으로 들어 올려졌다면 뱀은 곧 한 인격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단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은 뱀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뜻’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뜻을 주었던 동물이 에덴동산에 있었습니다.
역시 뱀이었습니다.
이렇게 뱀의 뜻이 곧 나의 뜻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뱀이 곧 나 자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 십자가를 보면서 그 십자가의 원인이 자아이고 자아가 곧 뱀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탄이 거둔 가장 큰 성공입니다.
십자가와 자아를 연결하지 못하면 십자가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때문에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재기한 켈리 최 회장도 있습니다.
켈리 최 회장이 마흔이 되어 빚만 10억이 되었을 때 그만 세상을 끝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 때문에 감수해야 했던 어머니의 십자가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술과 불필요한 모임과 드라마, 게임을 끊게 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힘입니다. 
 
어머니의 십자가의 탓이 자신이 술을 마시고 드라마를 보고 의미 없는 모임으로 시간을 허비한 탓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렇게 어머니의 십자가가 나의 자아와 연결될 때 어머니의 십자가는 헛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보아도 그 은혜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부모의 당연한 희생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의 고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먼저 행복해져야 합니다. 행복해야 행복한 것에 대한 감사를 십자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고통스러우면 부모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오히려 더 고통을 주어서 보복하고 싶어집니다.  
 
이를 위해 세례자 요한이 필요합니다.
지금 가진 것들로 이미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더 마음 아프게 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자녀는 부모에게 불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어떻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의지적으로 감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감사일기를 쓰게 하는 것도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고맙게 여겨집니다.
어떤 사람은 감사일기를 많이 쓰다 보니까 어머니에 대한 감사한 것 1,000가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아주 작은 것들에 감사하다 보니 이런 행복한 삶을 살도록 나를 낳으시고 희생하신
어머니에 대한 감사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뱀은 에덴동산의 일상의 삶에 감사하지 못하게 만들어 선악과를 바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그리스도인 생명 나무를 먹어도 소용없는 인간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바치지 않으면 성체성사가 의미 없어지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부모의 당연한 희생으로 여기게 만들기 때문에 그 피가 나를 죽이지 못하게 합니다.
감사일기를 쓰는 등의 노력으로 먼저 일상에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됩시다.
감사의 십일조를 봉헌할 수 있는 사람이 됩시다.
그다음에야 십자가의 희생이 나에게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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