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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8-22 조회수 : 937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참 인도자와 눈먼 인도자 분별 법  
 
          
어느 강론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태어나서 앞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소경 10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등산이라는 것을 듣기만 했지,  한 번도 등산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 같이 등산 한 번 가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자기가 안내를 할 테니 다 같이 산에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경들은 기뻐하면서 그를 따라 나섰습니다. 
 
산에 오르기 전에 그 안내자는 다들 앞을 볼 수 없고 나 혼자 볼 수 있으니 우리가 다 함께 몸을 묶으면 앞을 보지 못해도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제안하였습니다. 
그 소경들은 흔쾌히 동의하고 일렬로 서서 몸을 밧줄로 묶었습니다. 
 
안내자가 제일 앞에 서서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가면서 그는 그가 볼 수 있는 광경들을 일일이 다 설명해 주었습니다. 
소경들은 난생처음 하게 되는 등산에 두려웠지만 그 안내자를 믿고 길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안내자의 눈이 점점 흐려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내자는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10명의 소경들이 불안해 할까봐 그 사실을 감추었습니다. 
 
그 안내자의 눈은 점점 더 나빠져서 결국에는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안내자는 소경들이 불안해 할까봐 염려하여 오히려 더 호언장담을 하였습니다. 
 
“저만 잘 따라오십시오. 그러면 무사히 산을 내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정말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안내자를 따라가던 10명의 소경들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경들은 점차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자 자기 앞에 펼쳐진 장관을 모두 다 또렷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로 웅성웅성 대는 것을 듣고 이미 눈이 멀어버린 안내자는 이들이 불안해하는 줄 알고 계속해서 안심시켰습니다. 
그 모습을 보게 된 소경들은 그가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큰 불안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 안내자에게 계속해서 길을 멈춰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뒤에서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기분이 나빠진 그 안내자는 왜 자신을 믿지 못하냐면서 화를 내었습니다. 
길은 점점 낭떠러지로 향하고 있었고, 몸을 묶은 밧줄은 풀지도 못할 만큼 단단했습니다. 
그 눈 먼 인도자는 더 힘차게 낭떠러지 쪽으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인도자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로 누군가가 지어낸 것일 것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인도자를 올바로 선택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인도자를 선택하고 어느 정도 함께 하다보면 잘못된 인도자를 따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더라도 그 대열에서 이탈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단에 빠져있으면서도
이제는 창피해서 못나간다는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잘못된 인도자나 그런 인도자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길이 틀렸음을 알면서도 바꿀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그런 이들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도 없이 그들의 잘못을 밝히 드러내 보여주셨고,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자신들이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도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갔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합니다. 
그리고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퍼뜨린 소문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인도자들을 분별할 줄 몰랐기 때문에 망한 이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눈먼 인도자와 참 인도자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눈먼 인도자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좀처럼 돌아설 줄 모르고 다른 사람까지 죄를 짓게 만듭니다.
고집이 세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절대로 인도자로 삼으면 안 됩니다. 
 
유다는 자신의 죄를 뉘우칠 줄 몰랐습니다. 
베드로가 달랐던 것은 잘못을 뉘우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수장이 된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주장만 옳다고 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지도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 때 잘 보아야합니다. 
그 사람이 정말 인도자의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지 아니면 끝까지 아집을 부리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당신의 완전한 삶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그동안 저질러왔던 여러 잘못들에 대해 그것을 인정하고 공적으로 용서를 청했습니다. 
참 인도자는 잘못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오로는 위대한 사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한 때는 자신의 믿음으로 교회를 박해했지만,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자마자 또 자신이 박해하던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치며 충성을 다합니다. 
이런 인도자가 참 인도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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