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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8-14 조회수 : 1052

울타리가 느슨하고 모호한 공동체는 매력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매년 5만 명에 이릅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500만 명이 ​흡연으로 사망합니다.

흡연하고 장소를 옮기더라도 흡연자의 옷이나 머리카락 등에 여러 가지 유해 성분이 묻어와

주변 사람에게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금연 20분 후에는 혈압과 맥박이 정상화되며, 12시간 후에는 혈액 속 산소량이 정상화됩니다.

2주가 지나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폐 기능이 회복됩니다.

이후에는 여러 질병의 위험이 감소하며, 5~15년부터는 질병 위험이 정상인과 비슷해집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금연을 불가능한 과제로 여깁니다.

혼자 힘으로는 끊지 못해 금연보조제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약으로도 1년 금연 성공률이 20% 전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희소식이 있습니다. 담배를 정말 끊고 싶다면 이곳으로 가면 됩니다.

한 나라인데 앞으로 담배 없는 나라가 될 것 같습니다.

담배를 마약과 같은 것으로 규정해 2009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앞으로 담배를 죽을 때까지 살 수 없게 되며, 담배를 파는 가게도 찾기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이런 법을 만들려는 나라가 뉴질랜드입니다.

수십 년 후 뉴질랜드 자체가 금연할 수밖에 없는 국가가 될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금연하고 싶은 사람들, 혹은 담배 연기가 싫은 사람들에게 천국은 어디가 될까요?

바로 뉴질랜드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천국을 만들고 싶으셨습니다.

세속-육신-마귀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 공동체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것들을 끊고 사랑의 법만으로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니 사탄과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이들은 그냥 교회 안에만 머물면 됩니다.  

 

예수님의 공동체는 처음에 가진 재산을 다 팔아 봉헌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그 법이 얼마나 엄했는지, 재산의 반만 바친 하나니아스와 사피라는 벌을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느님께서 사람을 많이 늘려주신 이유는 돈 걱정하며 살 필요가 없는 사랑의 공동체라는 매력을 풍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가톨릭교회는 그런 매력을 풍기고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가 신자가 얼마냐고 물으면 한국에 한 500만 정도가 된다고 말합니다.

세례만 받으면 공동체 일원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예수님께서 처음에 계획하셨던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배울 수 없습니다.

한 나라가 담배를 팔지 않아야 ‘금연하려면 무조건 뉴질랜드로!’라는 말이 성립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금연하고 싶은 사람에게 매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나마 범위를 좁힌 것이 3년에 한 번 고해성사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무금을 많이 내고 단체에 속해 봉사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바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신앙생활 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동체는 매력을 잃고 또 그 안에서 성장도 할 수 없습니다.  

 강형욱의 ‘개는 훌륭하다’에서는 주인의 법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 개들이 많이 나옵니다.

개들이 곧 법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개들에게 자비롭고 개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물고 자기들끼리 서로 물고 싸우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지옥이 되어갑니다.

강형욱 훈련사는 그건 개들을 방치하는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개를 키우거나 더 데려와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저는 교회에서 에덴동산의 법은 지켜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느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선악과가 바쳐졌습니다.

교회의 일원이면 당연히 교무금을 내야 합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고백하는 의미도 있고, 본당과 교구가 유지되게 하기 위한 것도 있습니다. 

 

그다음은 아담과 하와의 친교였습니다.

그 친교 안에서 자녀를 많이 낳으라는 법이 실현됩니다.

이것이 선교입니다.

세례만 받으면, 혹은 3년에 한 번 고해성사만 보면 신자로 인정하겠다는 태도 자체가 어쩌면 자비롭게 보일 수는 있지만 교회 전체 이미지에는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상에 불을 놓으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세례를 통해 세상에 뿌려지는 성령이십니다.

그러니 성령의 불이 붙여진 사람과 붙여지지 않은 사람, 두 부류밖에는 없습니다.

선이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의 불을 붙여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어디로 와야 하는지 명확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주님께서 세우신 성령의 법이 실현되는 더 선이 명확한 공동체가 되도록

쇄신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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