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21,15-19
오늘 못 사는 건 죄가 아니다. 내일도 그러면 죄다.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악당 대부분은 자신들을 악당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악당이 악당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행위는 정당할까요?
1931년 5월 7일, 뉴욕 한복판에서 150명의 경찰관과 한 명의 범죄자 간의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그 살인자는 ‘쌍권총 크롤리’라 불리던 남자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 한 명이 순직합니다.
크롤리는 한적한 길에서 애인과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을 때 경찰이 다가와 운전면허증을 요구하자 총을 꺼내어 경찰을 마구 쐈습니다. 그리고 경찰의 총을 빼내 이미 죽은 경찰을 향해 또 한 발을 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중에 그는 이런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관계자분께…. 내 옷 안에는 피곤하고 지친 심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심장은 따듯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자 하는 심장입니다.”
그가 싱싱 교도소에서 사형당할 때의 나이는 고작 19세였습니다.
그는 사형을 집행하는 이들에게 “이 망할 놈들!”이라고 욕을 하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죽인 대가가 이런 거군”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겐 모든 살인이 정당방위였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지키려 했던 대가가 이런 거군”이라고 말했습니다.
데일 카네기는 뉴욕의 악명 높은 싱싱 교도소의 소장인 로즈와 몇 차례 서신을 교환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본 흉악범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싱싱에 있는 범죄자 중 자신을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당신이나 나와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라 생각하죠. 이들은 자신을 합리화하고 변명합니다.
왜 금고를 털 수밖에 없었는지, 왜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오류투성이이고, 때론 합리적인 나름의 논리를 동원해서 자신들의 반사회적 행동에 대해 설명하고,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그 행위의 정당성을 이해시키려 합니다.
결론은 그들이 감옥에 갇히지 않았어야 했다는 주장으로 귀결됩니다.”
왜 흉악범들까지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일까요? 나아지려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합리화입니다.
나아지려면 항상 지금의 나의 처지에 ‘근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
베드로는 당당하게 대답합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님은 이 대답에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또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또 물으시고 베드로는 또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또 물으십니다.
그래서 그에게 어떠한 한 감정을 끌어내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요한 21,17)
여기서 “슬퍼하며”라고 번역된 ‘뤼페오’란 단어는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마태 19,22)에서 쓰였듯이, 어떠한 기준이 미치지 못할 때의 슬퍼함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자신있어함이 아닌 당신이 원하시는 사랑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슬픈 감정을 가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그런데 뭐!’, ‘난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아!’라는 마음을 가지면 발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무언가 항상 부족하여 매일 나아지려는 삶을 살도록 종용하십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서 어쩔 수 없이 나쁜 사람이 된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개 우리에서 자란 옥사나 말라야가 개처럼 산다고 해서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발전할 수 있는데 그 자리에만 머물려는 마음이 죄인 것입니다.
그러려면 “당신도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나보다 못하면 못 했지 더 낫지는 않을걸요?”
라며 자기 합리화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어도, 감옥에 갇혔어도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된 이들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발전하려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지금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목적지를 정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으며 나아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닮고 싶은 모델을 정해 나아가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자리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주라기 월드 등의 주인공인 ‘크리스 프랫’은 본래 스트리퍼였고 딱 먹을 만큼만 일하는 한량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숙자였습니다.
식당에서 잠깐 아르바이트했는데 그 이유는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먹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에 코만도의 여주인공으로 나왔던 레돈총이 혹시 연기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크리스는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지만 그런 건 아주 잘 할 줄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이 자신감에 레돈총은 전화번호를 물어보았고 노숙 생활하던 그는 전화가 없어 친구 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물론 처음 출연한 영화는 질도 좋지 않았고 연기도 별로라 개봉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진작가가 우연히 그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서 그는 찍었고 당시 유명했던 히스 레저를 닮은 그는 드라마에 캐스팅되면서 천부적인 그의 재치로 점점 주연급 배우로 성장합니다.
나체로 여자들 앞에 나서는 장면에서 그는 팬티를 입고 등장해야 했는데 실제 나체로 등장해 배우들의 실제 반응을 끌어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몸 관리에 실패하여 체중이 끊임없이 불었습니다.
어디서도 그를 캐스팅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단역에 출연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먹고 살 수는 있었지만, 그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옥 훈련을 합니다.
그는 결혼도 하고 영화에서도 흥행 가도를 달립니다.
그는 자꾸 스필버그 감독이 자신에게 쥬라기 공원 4에 주인공이 되어 달라고 해서 짜증 난다는 동영상을 장난삼아 SNS에 올렸습니다.
그는 멈추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바람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라기 월드의 주연을 꿰차며 공룡 하면 떠오르는 대표 배우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자기 아들을 생각하며 그는 소아병동에 들러 아픈 아이들을 많이 위로해주고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사위가 됩니다.
어떤 임금에게 멋진 매 한 쌍이 선물로 들어왔습니다. 하나의 매는 잘 날았지만 다른 매는 나뭇가지에 앉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은 나중에 그 매를 날게 하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누구도 그 새를 날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농부가 왔다 가더니 그 새가 날게 된 것입니다.
임금이 어떻게 그렇게 하였느냐고 묻자 농부가 대답하였습니다.
“가지를 잘랐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여기서 만족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나의 자리에 있는 것을 근심하십시오.
안주하려는 마음, 이 자리가 꽃자리라는 말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대해서 베드로에게 근심하게 하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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