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7,20-26
일치의 기술: 영광을 보여줘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제 당신 제자들을 통해 믿음을 가지게 된 이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 기도 목적은 오로지 그들의 ‘일치’입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의 일치를 위해서는 ‘이름과 진리’를 말씀하신 것과는 달리 신자들을 위해서는 ‘영광’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2)
우리가 이 영광의 뜻을 온전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마지막 구절을 통해 보면 영광은 곧
‘이름’,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6)
예수님께서 신자들을 일치시키는 방법은 당신께서 받으신 사랑의 영광, 곧 성령을 신자들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분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머니에게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어머니에게 순종하지 않을까요? 어머니에게 순종해도 잘 될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돈 벌어오는 분은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옛날 정형화된 가정의 예입니다).
어쩌면 어머니에게 하는 그 순종이 아버지를 배신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순종하는 것에 머뭇거립니다.
이렇게 되면 형제들 간의 분쟁이 일어납니다.
이런 가정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게 됩니다.
자녀들을 일치시키려면 어머니는 자신을 따르는 것이 아버지를 따르는 것임을 인식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든 남편에게서 필요한 것을 얻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어머니에게 보는 영광입니다.
영광은 아버지에게서 오지만 어머니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영광을 보면 아이는 편안하게 어머니에게 순종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싸우지 않고 일치합니다.
직장으로 보면 이 영광은 리더가 가진 ‘법인카드’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인카드는 회사에서 팀원들의 일치를 위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준 영광입니다.
리더가 법인카드로 가끔 회식해 주거나 팀에게 필요한 것을 산다면, 팀원들은 그 리더에게 순종하는 것이 곧 회사에 순종하는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팀의 결속력은 강해집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도 인민군 장교가 동막골의 촌장에게 리더의 역할을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군대도 아닌데 동네 주민들이 촌장의 말에 순종하여 단합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선! 뭘 잘~ 믹이야지!(먹여야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은 본래 하늘이 주는 것이란 생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리더는 팀원들의 먹고사는 것을 책임져 줄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켈커타의 사랑의 선교회 모원에 사는 300여명의 수련 수녀들이 음식이 없어 모두 굶게 생긴 일이 있었습니다.
주방 담당 수녀는 마더 데레사에게 사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더 데레사가 몇몇의 후원자들에게 전화를 해서 도와달라고 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더 데레사는 여러 사람을 만나는 중이었으며 그 어린 수녀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매가 이번 주 주방 담당인가요? 그렇다면 경당에 들어가서 예수님께 먹을 것이 없다고 말씀드리세요.
그 문제는 해결됐군요.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그리고 십 분 후 현관 초인종이 울렸고, 처음 보는 어떤 남자가 서류철을 들고 마더 데레사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수녀님을 보자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데레사 수녀님, 공립학교 교사들이 파업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지금 막 들어왔습니다.
수업이 취소되어서 7,000개의 점심 도시락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도시락을 처리하게 도와주시겠습니까?”
마더 데레사는 하느님께서 주신 법인카드가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필요한 때면 언제든 쓸 수 있었습니다.
이 믿음이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이 영광이 형제 자매들을 일치시켰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께 순종하면 그것이 동시에 아버지께도 순종하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자녀들은 계속 어머니 머리 위를 바라보며 아버지의 영광을 찾습니다.
자녀들이 엄마의 머리 위에 아빠가 준 ‘영광의 관’을 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요한 17,24)라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박효진 장로의 유튜브에서 선배 장로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의 이야기를 들은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연세가 많아서 돌아가시면서, “이제 천사가 왔으니 내가 갈 때가 되었나보다. 나가서 좀 봐라!”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형제들은 ‘아버지에게 뭔가 보이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가만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빨리 나가서 보라니까 뭘 그리들 꾸물대냐?”라고 했다고 합니다.
형제들은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집은 초가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초가집 지붕 위로 둥그렇게 불과 같은 형체들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지붕이 불에 타는 것 같았습니다.
불붙은 떨기나무처럼 불은 있지만 집은 태우고 있지 않았습니다.
가족 모두 이 광경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켰고 아버지는 이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와서 보니 지붕 위에 있었던 천사들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것이 ‘영광’입니다.
이 영광을 받은 아버지의 자녀들은 서로 싸울까요, 아니면 사이좋게 지낼까요?
부모의 뜻은 언제나 형제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뜻을 어기는 것이 하늘의 뜻을 어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들은 절대 형제간에 싸우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자녀들은 어머니에게서 아버지의 영광을 보고, 어떤 자녀들은 보지 못합니다.
그 영광을 보지 못할 때는 어머니의 말에 권위가 없어서 자녀들이 말을 안 듣고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일치시키기 위해 먼저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알게 합니다.
그 영광은 바로 십자가의 순종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또한 내가 십자가의 피 흘림을 통해서만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십자가로 아버지께 순종하여 부활의 영광을 입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교회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 곧 그리스도의 영광을 받았습니다.
이 영광이 있는 한 교회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광을 포기하면 분열합니다.
가톨릭이 아닌 다른 종파의 그리스도교가 분열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영광을 교회에 주시고 그 교회를 통해 믿는 이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계속 드러내는 교회여야 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중략)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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